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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의 연인 퍼터②타이거 우즈를 매혹시킨 또 다른 연인 ‘스카티 카메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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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호 14면

타이거 우즈는 14개의 메이저 대회를 제패하는 동안 카메론 퍼터만 사용했다. 2008년 6월 14일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US오픈 3라운드 13번홀에서 이글 퍼트를 넣은 뒤 포효하는 모습. [샌디에이고 AP=연합뉴스

스코어를 줄여 주는 좋은 퍼터는 창고에서 나왔다. 1960년대 초반 항공 관련 과학자이자 골프광이었던 T P 밀스는 퍼팅이 잘 되지 않자 연습 그린에서 퍼팅 연습을 하는 대신 창고로 가서 퍼터를 만들었다. 이전까지 다른 클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되던 퍼터는 전용 그립과 스위트 스포트(이상적인 타점) 등 혁신이 여기서 이뤄졌다. 몇 년 뒤 역시 과학자(GE 연구원)이자 골프광인 카스텐 솔하임도 퍼팅이 안 돼 화가 나 창고에서 직접 퍼터를 만들었다. 잘못 맞혀도 거리나 방향에 큰 차이가 나지 않게 하려고 헤드 양쪽에 무게를 분산 배치하고 타구면의 가운데를 비웠다. 퍼팅을 할 때 종소리처럼 ‘핑’이라는 소리가 나서 회사 이름을 핑으로 지었다.

퍼터 이름은 ‘앤서’다. 솔하임이 이름을 짓느라 고민하는데 부인이 퍼터의 답이라는 뜻으로 앤서(anser, w는 간단하게 하기 위해 생략)라고 지으라고 했다. 66년 그가 만든 앤서 퍼터는 잭 니클라우스, 아널드 파머 등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오늘날 퍼터의 전범(典範)이 됐으며 핑은 골프의 메이저 브랜드로 컸다.

70년대 후반 한 10대 소년이 창고에서 열심히 퍼터를 만들었다. 골프계의 반 고흐라고도 불리는 스카티 카메론이다. 반 고흐는 죽어서 이름을 날렸지만 카메론은 살아서 영광을 누리고 있다. 퍼터에 강아지나 갈매기, 눈(雪) 같은 그림을 그리고 친구를 놀리는 내용까지 쓰는 이 장난기 많은 디자이너는 추앙된다. 그의 퍼터는 물론 액세서리까지 수집하는 컬렉터들이 매년 전시회를 열기도 한다. 일본엔 그의 박물관도 있다. 박물관엔 그의 퍼터는 물론 애마인 페라리까지 전시돼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그는 스타다. 스카티 카메론 동호회 회원은 2만 명이다. 한국 골프 동호회 중 가장 크다.

카메론은 62년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부터 골프를 즐겼다. 어려서부터 골프채 수집과 수리에 관심이 있었다. 13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엔 퍼터에 집착했다. 그는 “고교 시절 가장 못하는 것이 퍼팅이었기 때문에 항상 퍼터에 대해 생각했다”고 했다. 86년 그는 퍼터 회사인 레이 쿡에 입사해 영업을 했는데 판매량에 따른 수당을 받다가 고정급으로 바뀌게 되자 사표를 썼다.

그는 혼자서 퍼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은 부동산 거품의 절정기여서 돈이 넘쳤다. 그는 일본 관광객이 많은 하와이에서 퍼터를 팔았다. 다이아몬드 등을 박아 5만 달러에 팔기도 했다. 91년 일본의 부동산 거품은 터졌다. 카메론은 미국인에게 값싼 퍼터를 팔아야 했다. 이제 공장에서 찍어 낸 대량 생산품을 취급해야 했지만 그는 약간 달랐다. 제품에 이야기를 넣었다. 퍼터 별명을 ‘프라이의 동정(Fry’s Pity)’이라고 붙였다. ‘프라이 골프’의 사장 존 프라이가 그와 함께 골프를 치다가 처지를 딱하게 여겨 퍼터 700개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프라이의 동정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카메론은 투어 선수들에게 접근했다. 프로 선수들은 대부분 클럽 계약을 맺고 있지만 승부와 직결되는 퍼터만은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대회장의 훈련용 그린을 찾아가 퍼터를 펼쳐 놓고 영업을 했다. 선수들은 공장에서 찍어 낸 핑 앤서 퍼터를 그냥 썼다. 카메론의 퍼터는 특별했다. 왕관 모양을 새기는 등 다른 퍼터들보다 화려하기도 했지만 선수의 취향이 100% 반영되고 이름도 새겨 줬다. 선수들에게 “당신만을 위한 세상에 하나뿐인 퍼터를 만들어 주겠다”고 설득했다. 그는 스타들을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타이거 우즈는 아마추어 때부터 엄청나게 챙겼다.

‘퍼팅 도사’ 브래드 팩슨이 카메론을 쓰게 되자 투어에서 인기는 확 올라갔고 93년 마스터스에서 그의 퍼터를 든 베른하르트 랑거가 우승하면서 대중에게도 알려지게 됐다. 94년 타이틀리스트의 모회사인 아쿠쉬네트는 카메론과 협업 계약을 체결했다. 타이틀리스트는 첨단 스튜디오를 만들어 주고 풍부한 자금과 영업망을 지원했다. 카메론은 스튜디오에 선수들을 초대해 특별한 퍼터를 만들어 줬다.

카메론 퍼터의 성능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타이거 우즈는 열성팬이다. 나이키의 상징 선수가 됐지만 퍼터는 라이벌 회사인 타이틀리스트의 카메론을 고집하고 있다. 14개의 메이저대회를 모두 카메론으로 우승했다. 올해 디 오픈에서 나이키 퍼터를 잠깐 써 봤지만 외도는 길지 않았다. 대회 기간 중 바로 돌아왔다. 올해 디 오픈에 나온 선수 156명 중 89명이 카메론으로 공을 굴렸다.

카메론이 끔찍할 정도로 공을 들이는 PGA 투어를 제외한 다른 투어에선 오디세이를 쓰는 선수가 가 더 많다. PGA 투어에서 카메론을 쓰는 선수가 절반 가까이 되지만 올해 우승은 오디세이를 쓴 선수가 더 많이 했다. 핑 퍼터도 매니어가 많다. 국내 투어 상금랭킹 1위 김대현은 “카메론의 타구면이 너무 딱딱해 퍼트할 때 공이 튕겨 나가는 느낌이 난다”고 했다. 요즘 메이저 우승자 중 카메론을 쓴 선수를 찾기 어렵다. 카메론은 민감한 퍼터여서 특히 연습량이 적은 아마추어 골퍼에게는 적당하지 않다는 말도 나온다.

카메론이라는 인물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그를 시기하는 사람들은 카메론을 ‘스카티 카메라’라고 부른다. 카메론이 “핑 앤서 퍼터를 베낀 것 말고 퍼터 발전에 기여한 것이 없다”는 주장이다. 퍼터의 기능으로 봤을 때 그가 이뤄 낸 혁신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러나 카메론은 퍼터의 성능을 업그레이드시킨 밀스나 솔하임보다 훨씬 더 추앙되고 있다. 사람들은 피아노를 발명한 사람은 잊지만 모차르트의 음악은 기억한다.

카메론의 퍼터는 크게 두 가지다. 타이틀리스트를 통해 대량 생산되는 프로덕션 모델과 스튜디오에서 제작되는 투어 모델이다. 투어 모델은 카메론이 소재 선택부터 디자인, 마무리까지 혼자 한다. 프로덕션 모델로는 출시하지 않는다. 투어 모델은 왕관 모양에 이름을 새겨 주고 빨강 점이나 투어(tour)를 뜻하는 ‘서클 t’를 스탬프한다. 프로골퍼 홍순상은 “원하는 모양, 원하는 그립 등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퍼터’라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은 투어 모델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가지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투어 모델은 시중에 나오면 매우 비싸다. 카메론은 한정판 특별 퍼터를 자주 만들어 내면서 일반 골퍼의 수집욕을 자극한다. 새 퍼터 출시 기념으로 소량만을 만드는 퍼터, 메이저 우승 기념 퍼터, 유명 선수 퍼터, 스페셜 에디션 퍼터 등이다. 데이비드 듀발이 59타를 쳤을 때 만들고, 외동딸을 기념해 만들고, 그냥 만들어 보는 등 이유도 가지가지다. 이런 특별 퍼터는 일련 번호를 붙인다.

그는 과거 친한 친구에게는 L자를 새긴 퍼터를 줬다. 골프에서 내 상대가 안 된다(loser)라는 의미인데 부인이 무례하다고 해서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 일부러 그런 희소성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물건은 무척 비싸다. 그의 프로덕션 모델은 캘리포니아 휴양지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그중 라코스타 모델은 같은 이름을 쓰는 리조트에서 사용하지 말라고 해 단종됐다. 역시 비싸다. 97년 타이거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 기념 퍼터가 가장 비싸다. 다이아몬드를 붙이지 않았는데도 수천만원이나 된다. 카메론은 와인처럼 빈티지가 생겨나고 복잡해진다. 그래서 수집가들은 더 경쟁적으로 카메론을 찾는다. 투어에선 카메론을 쓰지 않는 선수라도 대부분 카메론 퍼터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 카메론 동호회 회원인 고형석(42)씨는 “이 퍼터를 쓰는 주인공인 내가 특별해지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미국 동호회에서는 카메론 퍼터를 ‘섹스 온 어 스틱(sex on a stick)’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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