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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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즈음 각 기업이 운영하는 홈페이지는 고객과의 대화를 활성화하는데 열성적이다. 소비자들의 좋은 의견을 받아들여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매출도 늘릴 수 있는 아이디어는 없을까를 골똘히 생각한다. 시장의 소리를 듣고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 기회도 모색한다. 고객들이 '쓴소리'방에 관심을 갖도록 여러 가지 유인책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각 당 후보들의 홈페이지나 출판물에도 '쓴소리 단소리'코너의 움직임이 꽤 요란하다. 유권자들이 먼저 그 코너를 만들어 '고언(苦言)' 형식의 질타도 이어진다. 어떤 정책은 앞뒤 논리가 맞지 않아 허황된 것이라는 내용이 있는가 하면,이미지 관리를 위한 제언이 수두룩하다. 때로는 '쓰레기'로 처리되는 수많은 쓴소리 가운데 득표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 몇 개를 얻기도 한다.

어느 조직에서나 쓴소리의 필요성에 공감한다. 교만과 게으름·자기만족에 대한 경고이며 성장과 발전의 계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부터 있었던 '간언(諫言)' '충언(忠言)' '정언(正言)'도 기실은 '고언'이다. 신하가 간언하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직간(直諫) '보다는 완곡한 표현으로 잘못을 고치도록 하는 '풍간(諷諫)'이 더 효과적인 때가 많다. 간언을 하지 않는 신하들을 직무태만이라고 꾸짖어왔던 중국 당 나라 태종도 말년에는 비판이 싫어졌다. 승상 위징(魏徵)의 끊임없는 간언에 화가나 그를 죽여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황후가 "군주가 어리석으면 아첨배만 득실거리는 법입니다. 폐하 옆에는 바른말 하는 충신들이 있으니 어찌 감축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는 말로 충신의 목숨을 구했다.

관계에서나 민간기업에서 오랫동안 주요 직책을 담당해왔던 책임자들이 자리를 떠나면서 남기는 쓴소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박종익 전 손해보험협회장의 지나친 정부 인사간섭 관행 시정 요구나 공정거래위원회에서 1급으로 명예퇴직한 임영철 변호사의 '고위 관료들이 부하들로부터 수발 받는 모습은 조폭적 예우 수준'이라는 비판 등은 귀담아 들어야 할 말이다. 연말 퇴임을 앞둔 세계 최대 컴퓨터 기업 IBM의 루 거스너 회장은 "조직이 관료화되지 않도록 늘 싸워야 한다"는 조언을 남겼다.

쓴소리는 비·바람을 이겨낸 경륜과 품격이 갖추어져야 더 효과가 있다. 민감한 시기일수록 쓴소리의 시기와 방법의 선택도 잘해야 한다. 본인이 떳떳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야 불필요한 시비가 붙지 않는다.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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