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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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영국계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이 제일은행을 인수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큰 화제다. 5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날린 한국 정부와 1조1500억원의 매각차익을 남긴 뉴브리지 캐피털이 대조돼 더 그렇다. 외국의 투기자본에 대한 우려와 한국 정부의 무능에 대한 질타에도 불구하고 공기업의 민영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전제는 언론들이 공유하는 바가 아니었나 싶다. 비판보다는 한국의 자본이 민영화의 주체여야 한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느껴지는 보도였다.

*** 시장이 꼭 정당하진 않지만 …

제일은행 매각 소식이 조간을 장식한 날 저녁 TV 뉴스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출연해 관.민 합동으로 운영되는 제3섹터 기업들의 문제점들을 전했다. 이 기업들에 대한 감사원의 지적은 마치 현실 사회주의 노멘클라투라의 부패를 연상시킨다. 전국적 차원뿐 아니라 지방자치의 차원에서도 공기업은 안 된다는 이미지를 이 보도는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계획'이라는 천적이 사라진 이제, 경제의 효율성과 합리성이라는 측면에서 시장은 그야말로 무적이다. 그런데 이윤을 위한 합리성이 아니라 누구를 위한 합리성인가 하는 관점에서 보면 시장의 정당성은 그리 자명하지만은 않다.

영국의 서식스 대학에서 강사 자리를 얻은 한 독일 친구는 영국의 철도가 너무 불편해서 아무래도 차를 사야겠단다. 민영화된 영국의 철도보다는 독일의 국철이 훨씬 편리하다는 것이다. 어떤 영국 친구는 블레어의 '민영화위원회'는 '거짓말위원회'라고 고개를 흔든다. 민영화된 도쿄의 지하철을 타본 사람이라면 불과 서너 정거장을 가는 데도 두장 이상의 승차권을 사야만 했던 경험들을 갖고 있을 것이다. 지선을 갈아탈 때마다 회사가 서로 다른 표를 사야만 하는 민영화의 불편함이다.

물론 만성적인 재정적자가 낳은 국가 재정의 부담을 덜어내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불편이라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공기업 적자를 보전하는 데 쓰이는 예산을 사회복지 예산 등으로 전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민영화에 대한 반대가 능사만은 아닌 것이다.

시장의 도구적 합리성을 충족시키는 민영화가 반드시 삶의 합목적성을 충족시키지 않듯이,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보전해야 하는 공기업체제 또한 반드시 사회정의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제네바시가 운영하는 대중운송회사의 경험은 판단의 소중한 준거점을 제공해 준다. 벌써 10여년 전이지만, 영국에서 민영화 논쟁이 뜨거울 때 한 노동당 좌파의원이 제네바를 찾았다. 대중교통수단의 쾌적함도 쾌적함이지만, 전차나 버스의 정확한 운행 시간, 적은 인구에 런던보다 비싸지 않은 요금으로 흑자를 낸다는 사실 등에 그는 감탄했다. 몇 명의 운전기사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그는 그 비결을 알아냈다. 그들의 대화에는 높은 교양과 교육 수준, 자신이 속해 있는 제네바라는 도시공동체에 대한 공공적 봉사라는 노동윤리가 자연스레 배어있었던 것이다. 스위스의 뿌리깊은 지방자치의 전통도 한몫했을 것이다.

*** 올바른 노동문화 자리 잡아야

공기업이냐 민영화냐의 논의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의 생산성 이전에 자리잡은 노동의 문화인 것이다. 공공성의 노동문화에 뿌리박지 못한 공기업은 생산성도 떨어질 뿐더러 사회정의의 이름으로 권력의 이해를 포장하고 비능률과 무능을 정당화하기 쉽다.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를 논의할 때, 그 기업 더 넓게는 그 사회의 문화적 결에 대한 고찰이 요구되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다.'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를 견인해 내는 것은 경제의 힘이 아니라 그 사회의 문화적 힘인 것이다.

임지현 한양대 교수.역사학

◆ 약력:▶서강대 대학원 졸업. 서양사 박사 ▶크라쿠프 사범대, 야길조니언대 초청교수 ▶저서 '마르크스 엥겔스와 민족문제' '서양의 지적운동' '민족주의는 반역이다' '적대적 공범자들'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