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22% "아버지와 하루 1분도 대화안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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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하루 평균 6시간59분 공부, 4시간24분 여가 활동, 일주일에 10시간30분 인터넷 접속, 월평균 휴대전화 요금 3만1천4백원, 79%가 가출 충동 경험…'.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李承姬)가 23일 처음으로 발간한 '청소년 보호 백서'에 나타난 우리 청소년들의 모습이다. 백서를 통해 본 청소년의 현실은 결코 밝지 않다. 가정·학교·사회 모두가 이들을 제대로 이끌기엔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보호위는 1997년 출범 후 5년간 축적해온 연구 결과와 교육인적자원부·문화관광부·통계청 등 다른 기관의 자료를 망라해 이 백서를 펴냈다. 청소년 문제를 입체적인 시각에서 접근, 거시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다.

◇가정=고교생 중 22%가 아버지와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에 1분도 안된다고 응답했다. 11%는 어머니와의 대화 시간도 1분에 못미쳤다. 그러다보니 고교생들은 아버지(41%)나 어머니(58%)보다 친구(73%)가 자신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생 열명 가운데 한명은 "아버지·어머니가 나를 믿지 못한다"고 답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부모와의 교감이 부족했다. 가족의 무관심은 아이들의 비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음란 사이트를 본 적이 있는 초·중·고 학생의 대다수(92%)가 접속 장소로 집을 꼽았다. 가출 이유도 부모와의 갈등(50%)이 가장 많았다.

◇학교=선생님과의 신뢰는 학년이 올라갈수록 낮아졌다. ▶교사와의 불신(70%)▶지나친 꾸지람(80%)▶불필요한 체벌(75%)▶수업능력 부족(81%) 등 대부분의 중·고생들이 선생님에 대해 좋지 않은 기억을 갖고 있었다. 교사와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다 보니 "선생님께 들키건 말건 신경쓰지 않고 수업시간에 잔다"(24%)는 식의 교권 붕괴 현상도 나타난다.

중·고생 모두 친구들과의 관계가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요인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학생의 경우 72%가 교우관계가 만족스럽다고 답했다. 미팅을 해본 학생은 23%였으며 17%는 이성친구가 있었다. 외모에 대한 스트레스도 적지 않다. 초등학교 때 16%였던 외모 고민 경험률이 고교에선 51%로 부쩍 올라간다.

◇사회=우리 주변에 즐비한 각종 유해업소들이 청소년들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프·소주방을 출입해 본 학생이 4분의 1이었다. 음주 경험 학생 중 23%는 초등학생 때 처음 술을 마셨다. 흡연 학생의 91%가 중3 이전에 처음 담배에 손을 댔다. PC방(95%)·전자오락실(91%)·노래방(89%) 등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가본 것으로 확인됐다.

청소년 열명 중 세명은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으며 일의 종류는 '전단지 돌리기'가 71%로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아르바이트 과정에서 임금 체불(17%)이나 성희롱(9%) 등을 겪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성매매 제안을 받은 적이 있는 여학생이 17%에 이르렀으며 남학생의 6%도 이같은 제안을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과제=고교생의 89%가 '사회가 불만스럽다'고 답할 정도로 청소년들의 현실인식은 비판적이었지만 '노력에 따라 장래에 성공할 수 있다'(90%), '한국인이란 사실이 만족스럽다'(67%)는 등 건강함도 엿보였다. 사회가 제대로 이끌면 아직 우리 청소년들의 장래가 밝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청소년보호위 관계자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에서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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