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이시종 충북지사의 실용·실리 선택 돋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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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지방자치 민선 5기가 출범한 지 한 달이 지났건만 혼란과 갈등이 그치지 않고 있다. 새 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은 마치 점령군이나 된 듯 효율성과 합리성은 따지지 않고 기존의 정책을 마구 뒤흔들고 있다. 단체장의 재량권 밖에 있는 국책 4대 강 사업에 어깃장을 놓고(경남도), 자구 노력도 없이 무책임하게 지불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하고(경기도 성남시), 공무원노조에 휘둘리는 인사로 반발을 사는(경기도 안양시) 등 곳곳에서 잡음이 들린다.

공정률 70%가 넘은 의정부 경전철 사업이나 주민소환투표까지 거쳐 논란에 종지부를 찍은 제주도 해군기지 공사를 비롯해 대형 사업을 대폭 수정하거나 백지화하겠다고 나선 단체장도 있다.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교육감들은 주요 교육 현안을 놓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는 데 더 분주하다. 중앙 정부 또는 전임자의 역점 사업이라는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로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부정(否定)하는 ‘무작정 거꾸로’ 행태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이시종 충북지사의 실용주의적 접근은 그래서 신선하다. 그는 자립도 25%의 부실한 재정상태를 보완하기 위해 인력 감축과 조직 축소를 하기로 했다. 퇴직하는 본청과 출연기관 직원 121명의 결원을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연간 100여억원의 예산을 아껴 복지·서민경제 분야에 쓰겠다고 한다. 중앙 정부에 손 벌리고 세금을 더 거두는 대신 스스로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구 조치를 먼저 취하려는 자세는 귀감(龜鑑)이 될 만하다.

4대 강 사업에 대한 입장 선회도 실용적 타협과 소통의 정신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 지사는 그제 정부 과천청사로 올라와 국토해양부 4대강살리기본부장과 협의한 뒤 “4대 강 사업에 대해 큰 틀에서 찬성한다”고 했다. ‘무조건 반대’에서 ‘4대 강 사업 수용-부분 조정’이라는 접점을 찾아내는 융통성을 발휘했다. 그는 국익과 함께 도(道)와 주민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고심했을 것이다. 사실 4대 강 사업이 강 살리기 목적에 충실하다면 무턱대고 반대할 명분이 없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이라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정권 심판론’을 내세우고 당선된 이 지사는 공허한 명분에 집착하기보다 실리와의 조화를 선택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변화를 선택했다. 광역단체 16곳 중 8곳, 기초단체 228곳 중 124곳의 단체장이 교체됐다. 새 단체장은 전임자와 정책적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다. 기존 사업이나 행정에 오류(誤謬)가 발견되면 시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사사건건 ‘과거는 없던 일’로 하는 행태는 행정력과 예산 낭비를 초래하고 혼란을 부채질할 뿐이다. 단체장의 1차적 과제는 지역 발전에 있다. 차별화도 좋지만 모든 사안에 합리적이고 실용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충남도가 어제 4대 강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조건부로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긍정적 변화의 시작이다. ‘이시종식(式) 실용 행정’이 더 확산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