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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시아 대재앙] 반다아체서 의료봉사 이용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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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10일 오후 2시(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의 자이날 아비딘 병원 응급실.

민간의료봉사 단체인 '글로벌 케어' 회원으로 한국에서 온 이용훈(40.사랑을 나누는 의원.사진)씨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인공호흡기, 인공호흡기 어디 있어…"

해일에 휩쓸려 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40대 남자가 파상풍으로 심한 경련을 일으키며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인 의사는 "장비도 의약품도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급한 대로 환자의 가슴을 계속 눌러대며 호흡을 유지시키려 했다. 이때 간호사들이 이씨를 급히 찾았다. 오른쪽 발바닥이 10cm 이상 깊게 파인 20대 남자가 피를 흘리며 실려온 것이다.

부서진 집의 지붕을 고치다 떨어졌다고 한다. 출혈이 심해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다. 1시간30분간 40바늘 넘게 꿰매는 수술을 하고 항생제 주사를 놔주었다. 마취도 제대로 하지 못해 거의 실신상태에 빠졌던 환자는 "뜨리마까시(고맙다)"라며 힘없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다음 환자는 파도에 휩쓸렸다가 살아남았다는 7세짜리 남자아이. 얼굴과 팔이 곪아 고름을 짜내줬다.

인도네시아인 간호사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아이를 달래며 "아이가 살던 마을 사람 수백명 중 5명만 살아 남았다"고 말했다.

진료 시작 2시간여 만에 이씨의 하얀 가운이 땀으로 젖었다. 자이날 아비딘 병원의 의료진 대부분은 이씨처럼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이나 외국에서 왔다.

70여명이 3교대로 근무하지만 중노동이나 다름없었다. 병원 책임자인 의사 슈밋은 "이 병원도 해일에 휩쓸려 환자와 의료진 1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말했다. 현대식 대형 병원이었던 건물은 곳곳이 부서졌다. 오후 8시쯤 120여명의 환자를 치료하고나서야 응급실 근무를 마칠 수 있었다.

근무 교대를 한 뒤 파상풍 환자가 걱정돼 중환자실을 찾았으나 환자는 이미 사망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반다아체(인도네시아)=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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