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의 이중 효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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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호 31면

6·2 지방선거에서 압승했던 민주당이 7·28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했다. 민주당의 오만이 패인으로 질타받고 있지만, 두 달 만에 나온 양 극단의 결과는 지방선거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역시 천안함 특수효과가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그동안 민주당은 역(逆)안보 장사를 활용해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고 노골적으로 자랑할 수 없었다. 한나라당 또한 이 대목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아 천안함 사태의 지배적 영향론은 이설처럼 취급받았다.

이와 관련해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얼마 전 구설에 올랐다. 유 장관은 “젊은 애들이 전쟁과 평화냐 해서 한나라당을 찍으면 전쟁이고, 민주당을 찍으면 평화고 해서 다 (민주당으로) 넘어가고…”라고 말했듯이, 민주당이 전쟁 공포를 자극해 20~30대의 표를 끌어 모았다는 증거는 적지 않다. 만약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국면에서 전국적인 선거가 있었다고 가정해 보면, 천안함 정국과 지방선거 간의 관계를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

당시 광우병 촛불시위에서 경험했듯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공포감의 자극이야말로 단기간의 대중 동원에 가장 효과적이다. 여기에 권력에 의해 불의가 자행되고 있다는 분노가 결합되고, 국민의 건강권·민주주의·평화와 같은 추상화된 명분을 덧칠하면 거침없는 집단행동이 가능해진다. 문제는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공포나 전쟁 공포 모두 과장되고 왜곡된 정보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장됐다는 것이다. 특히 천안함 사건에는 복잡한 이중의 구조가 존재했다. 민·군 합동조사단이 천안함 침몰 원인을 발표한 데 대해 무차별적인 의혹 제기가 뒤따르고 약 30%에 달하는 국민이 이를 불신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불신은 민주당 등이 전쟁 공포를 활용하는 것을 용이하게 해주었다. 북한을 자극해 전쟁으로 치닫는 상황은 싫다는 심리는, 민주당의 ‘정부 발표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에 귀를 기울이게 만들고 ‘전쟁기피심리’에 대한 부채의식을 면제해주었다.

민주당이 ‘묻지마식 반대’의 정치에 빠지는 이유는 정치공학적으로는 쉽게 설명될 수 있다. 민주화 이후 20년이 넘었지만, 아직 많은 유권자가 ‘선명 야당이 진짜 야당’이라는 권위주의 시대의 관성에 빠져 있다. 특히 지역·이념·세대를 배경으로 한 고정불변의 반(反)한나라당 투표층이 두텁게 존재한다. 낮은 투표율로 지지층의 결집이 관건인 재·보궐선거가 해마다 두 번씩 치러지면서 ‘묻지마식 반대’는 민주당에 뚜렷한 이익을 안겨주었다.

더 많은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 이익의 추구는 기업의 이윤 추구만큼이나 당연시되지만 그렇다고 윤리가 배제될 수는 없다. 허위사실에 의존하거나 국가공동체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은 천안함 사태를 놓고, 북한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모호하게 만들려고 애를 썼고, 평화를 구걸하자는 캠페인을 벌임으로써 정파를 초월한 안보 공조의 룰을 무시했다.

‘벼랑끝 전술’을 펼치는 북한 정권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전술적 유연성은 필요하지만, 눈앞의 명백한 도발에 대해 당근을 주자는 주장은 공동체의 기본을 무너뜨릴 수 있다. 광우병 파동이 그랬듯이 진실에 근거하지 않은 대중의 공포와 분노는 오래가지 못한다.

10년간이나 집권했던 민주당은 야당으로 돌아간 지 2년6개월 만에 보편적인 국가운영자의 입장을 놀라울 만큼 빠르고 쉽게 망각하고 있다. 그런 현상이 왜 빚어지는지 규명하는 것은 정치학의 연구과제가 될 것이다. 민주당은 본래 야당 DNA를 갖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한국 사회 전반의 갈등구조와 문화 수준을 연구해 보아야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홍진표 서울대 총학생회 사무국장, 범민련 간사 등을 역임하며 세 차례 투옥됐으나 1997년 이후 북한민주화운동과 뉴라이트운동을 펼치며 보수 논객으로 활약 중이다. 공저로 『거짓과 광기의 100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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