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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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윤씨는 다시 웃었다. 웃음을 관장하는 기관의 흘게가 풀린 듯, 찰기 없는 밥알처럼 푸슬푸슬한 웃음… 윤씨는 꽃을 쥔 손을 풀려 하지 않았다.

"어머니, 이 꽃 놓으세요. 씻으셔야죠."

올케가 손을 벌려 꽃을 뽑아내려 했다. 윤씨의 얼굴은 단박 경계심으로 단단해졌다. 은용은 올케의 손을 잡았다. 그러면 안 돼요.

"엄마, 이 꽃 참 예쁘네요. 어디서 이렇게 예쁜 꽃이 나셨을까? 이거 저 주려고 가져오신 거죠?"

…윤씨는 스르르,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길위의 집』(이혜경, 민음사)

설명하는 대신 정황만 그려내고는 뒤로 빠지는 작가 이혜경. 맑은 정신이 떠난 윤씨. 집 나갔다가 꺾어온 꽃을 놓으려 하지 않네요. 며느리의 강압적 명령문에는 완강하게 저항하고 딸의 청유형 의문문에는 순순히 승복하는 윤씨. 이혜경의 햇볕 정책. 이효석 문학상 받았다던데, 축하해요, 혜경씨.

이윤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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