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D-10>金 캐는 멀티플레이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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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외국인 감독과 12명의 멀티 플레이어'.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월드컵 축구 대표팀 얘기가 아니다. 부산 아시안게임 근대5종 선수단을 일컫는 말이다.

사격·펜싱·수영·승마·육상을 하루에 전부 치러내는 근대5종은 체력·정신력·집중력에다 동물을 다루는 능력까지 갖춘 '르네상스적 인간'을 요구한다. 근대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은 "근대5종 선수만이 올림픽 대회의 진정한 선수로 불릴 수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근대5종의 최강국인 헝가리 챔피언에 여덟 차례나 올랐던 칸찰 타마시(52)는 88서울올림픽 때 헝가리 대표팀 코치로 출전한 것을 계기로 1991,97년에 이어 벌써 세번째 한국 대표팀을 지도하고 있다. 체력종목(육상·수영)을 주로 맡는 그는 기술종목(펜싱·사격·승마)코치들을 리드하며 전체 훈련 스케줄을 조정하는 '코디네이터' 역할을 한다. 각 종목 코치 입장에서는 당연히 선수들이 자신의 종목에 더 치중하기를 원한다. 이를 적절히 통제하며 균형을 맞춰주는 데는 상당한 노하우와 경험이 필요하다.

"히딩크를 아느냐"는 질문에 그는 "누구냐"라며 너스레를 떨었다.대표팀 이영찬 코치는 "감독님은 히딩크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추진력이 있다"고 귀띔한다. 훈련에 단 한 차례도 늦거나 빠진 적이 없고, 선수 개개인의 특징과 훈련 과정을 꼼꼼하게 노트하고 체크한다. 제사나 명절 등 우리 문화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신문을 떠듬떠듬 읽을 정도로 한글도 공부했다.

근대5종은 남녀 개인·단체·릴레이에 6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개인전은 먼저 10m 공기권총 20발을 쏘고, 참가선수 전원과 돌아가며 단판 승부의 펜싱을 한다. 이어 2백m 수영을 한 뒤 말을 타고 12개의 장애물을 넘는다. 마지막 3천m 달리기는 앞선 네 종목 합산점수 1위가 먼저 출발하고 4점당 1초씩 출발 시간이 늦춰진다. 결승선 도착 순으로 최종 순위가 결정된다. 단체는 네 명의 성적을 합산한다.

김미섭(30·전남도청)·한도령(26·논산시청)·김덕봉(26·대전시청) 등이 나설 남자는 금 3개를 모두 걷어간다는 목표를 세웠다.한체대 선후배인 정창순(22)과 박정빈(19) 등을 내세운 여자는 전력상 중국에 다소 처진다는 평가지만 결과는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

타마시 감독은 "근대5종은 결과를 점치기 매우 힘든(unstable) 종목이다. 선수들이 부담갖지 않도록 조용히 지켜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기야 근대5종 종목이 뭔지도 모르면서 "금 몇개 내놔라"고 한다면 그것도 염치없는 노릇이다.

쿠베르탱은 이런 말도 했다.

"근대5종을 하는 사람은 경기에서 승리를 하든 못하든 우수한 만능 스포츠맨이다."

창원=정영재 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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