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핀 꽃 쉽게 시들지 않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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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정글에서 살아 남기 위해선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습성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해 평소 사냥 기술을 갈고 닦는 게 필수적이다. 연예가 역시 '정글의 법칙'이 어느 정도 통용되는 곳. 스타는 하늘의 별처럼 빛나지만,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선 수많은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탤런트 노현희(31)는 2002년 정글의 시험을 가장 멋지게 통과한 연예인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지난 2월 설 연휴 TV에서 '뜻밖의 스타'로 재탄생했다. 연예인들의 노래 실력을 겨루는 SBS '도전! 1000곡'의 총결산편인 '황제전'에서 쟁쟁한 가수들을 모두 제치고 여황제에 등극한 것이다.

현란한 춤솜씨와 가창력,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를 선보이며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방송사 홈페이지엔 '웬만한 가수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극찬의 글이 끊이지 않았다. 짜고 한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나돌 정도였다. 그 탄력을 받은 그녀의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최근 유학을 떠난 이성미의 뒤를 이어 SBS '토요스타 클럽'의 MC를 맡았다. 또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의 고정 패널 자리도 거머쥐었다.

오는 21일 추석엔 노래 자랑 대회를 둘러싼 해프닝을 그린 KBS 특집극 '첨성대의 달'에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올 가을 인천방송에서 방송될 일일 연속극 '민들레 가족'의 주연도 맡았다. 트럭을 몰고 다니며 야채 장사를 하는 억척스런 여인네 역. 정통 드라마 첫 주연이다. 1991년 데뷔 후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지난 5월 결혼한 MBC 아나운서 신동진(35)씨와 며칠씩 얼굴을 못보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부상(浮上)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라는 게 주변의 평가다. 실제로 그녀가 데뷔 초부터 가장 많이 들어온 말이 "넌 10년 후 각광받을 스타야"라고 한다.

"요즘도 연극 '사랑을 주세요'(극단 미연)에서 정신지체아 역으로 나오지만 10년 동안 매년 두 편씩 연극·뮤지컬 무대에 섰어요. 어떨 때는 관객이 1~2명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죠. 많이 울었지만 한번도 무대를 떠나지 않았어요. TV도 마찬가지예요. 역할이 미미하다고 해서 출연을 거부한 적은 없었어요. 어떤 배역이든 배울 점이 있다고 보고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단역 배우로 만족해야 했던 시절 수입 전부를 춤이나 노래 등을 배우는 데 투자하기도 했다는 그녀. 이번 추석 그녀는 자신을 스타로 만들었던 '도전 1000곡'무대에 다시 선다. 1백회 특집인데, 노래로 한가락 한다는 10명의 연예인이 황제 노현희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형식이다.

"도전자보단 챔피언의 마음이 더 괴롭더군요. 연극이 끝난 뒤 매일 밤 2~3시까지 노래를 연습했어요. 연애할 땐 같이 다녀주던 남편도 이젠 지쳐서 안따라와요. 그래도 구석 방 하나 빌려 피나게 노래부르다 와야 마음이 편해요."

이젠 노래방 책을 펴면 모르는 노래가 거의 없을 정도. 대신 모든 노래가 시험 문제로 보이고, 1절만 외우게 되는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한다. 화려한 시절을 맞이한 그녀의 나이 서른 즈음. 누군가 잔치는 끝났다고 했지만 그녀의 식탁은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무대에 설 수 있는 힘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려요. 소원이 있다면 화려한 불꽃을 태우다 무대에서 숨을 거두는 거예요."

이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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