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아침책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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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 검객이 제자들을 이끌고 고수를 찾아가서 물었다.

"어떻게 칼을 써야 하는지 곧바로 보여주십시오."

고수가 말했다.

"나에게 칼을 주게."

검객이 예의 바르게 칼날을 쥐고 칼자루를 고수에게 건네주자마자 고수는 검객의 목을 단번에 잘라 버렸다.

『황금털 사자』(최승호 우화, 해냄)

연이틀 칼 이야기를 인용하게 되네요. 내가 날마다 운용하는 언어가 칼 비슷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입니다. 최승호 시인의 언어는 정말 칼 같지요. 두어 달 전 한 젊은 검도 고수로부터 죽도(竹刀)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고수는 내게 준 죽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그새 다른 죽도를 구해놓았다는 전갈이 인편에 날아드네요. 나는 아직 죽도를 길들이지도 못했는데 말이지요.

이윤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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