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갤럭시행 무산 홍명보 : "기존 스타 집착말고 유망주 길러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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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왜 미국행에 집착하나.

"은퇴 뒤 유럽에 가 팀과 선수 관리·구단 행정 등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어학연수를 포함해 3~5년이 필요하다. 미국에서 선수로 뛰면 이 기간이 단축된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배우는 것과 일반인으로서 배우는 것에는 차이가 많다."

-왜 영어를 익히려 애쓰는가. 영어 때문에 곤란을 당한 적이 많은가.

"기본 회화는 조금 하지만 불편한 점이 많다. 국제축구연맹(FIFA) 선수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했다가 영어가 안돼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있었던 적이 있다. 그 다음부터는 부담을 느껴 못갔다."

-한국의 국보급 선수가 헐값에 팔려나간다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적료없이 보내주는 게 정상이라고 본다. 독일의 마테우스가 미국 프로축구로 갈 때 바이에른 뮌헨에서는 '우리 팀과 독일 대표팀에 크게 공헌한 선수이기 때문에 이적료없이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포항과의 계약이 내년 말까지고, 계약금 5억원도 이미 받았는데 팀에 손해를 끼쳐서야 되겠나.

"지난해 복귀 계약할 때 지도자 연수비로 1억원을 받기로 했다. 그렇지만 나는 돈보다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1년 정도만 시간을 투자해 달라고 구단에 선처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면 나중에 포항에 돌아와 일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보내달라고 떼쓰는 것은 아니다."

-좋은 선수들이 다 외국으로 나가버리면 국내 리그는 어떻게 하나.

"프로리그보다 대표팀에 포커스가 맞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리그도 스타 선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일반 선수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구단은 기존의 스타 선수에게만 집착하면 안된다. 송종국이 빠져나가 관중이 줄었다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를 대체할 선수를 빨리 육성해야 한다."

-월드컵 미국전에서의 오노 골 세리머니를 홍선수가 제안했다던데.

"미국전 전날 아는 사람이 오노 세리머니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전화를 해왔다.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어 선수들에게 제안했더니 모두들 좋다고 했다."

-스페인전 승부차기 때 상황에 대해 말해달라.

"내가 찰 때보다 앞 선수들이 찰 때 더 떨렸다.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앞 선수들이 다 성공시키고 정작 내가 실축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호아킨의 킥을 이운재가 잘 막아내자 마음이 무척 가벼워졌다. 찰 방향을 미리 결정해놓고 차러 들어갔다. 전날 PK 연습을 했지만 몇명의 선수를 따로 정해서 하지는 않았고 모든 선수가 돌아가면서 연습했다."

-터키와 3,4위전을 하기 전 자유시간에 선수들이 술을 마셨다는데.

"잘 모르겠다. 선수들에 따라 다를 것이다. 하지만 그 때는 히딩크 감독이 공식적으로 이틀간의 외박을 줬기 때문에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통제된 상황에서 금지된 행동을 한 것이 아니므로 '월드컵 기간에 왜 술을 마셨나'라고 질책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터키전에서의 '11초 골'은 어떤 상황에서 빚어졌나.

"그때 나는 유상철이 당연히 골키퍼에게 백패스할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볼이 내게로 왔다. 경기 전에 물을 많이 뿌려 그라운드가 미끄러웠고 볼에도 물이 묻어 속도가 빨랐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해 볼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 내 실수였다."

포항=정영재 기자

미국 프로축구 LA 갤럭시와의 이적 협상이 결렬된 다음날인 지난 29일 오후 포항 축구전용 구장에서 홍명보(33·포항 스틸러스)를 만났다. 그는 "내가 원하는 건 돈보다 시간이다.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는 내 인생에서 모처럼 맞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그로부터 협상 결렬의 소회와 월드컵 당시의 뒷얘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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