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야조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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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진나라의 시황제와 로마의 네로, 독일의 히틀러와 소련의 스탈린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것이 모두가 '예술 지향적'이라는 점이다. 독재자를 예술의 테두리에 넣어 상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그들은 예술과 문화를 개인 우상화의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강력한 권력을 휘둘렀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네로는 곧잘 무대에 등장해 노래를 불렀으며 요란하게 조직된 박수부대의 찬양을 받았다. 그는 언제나 모든 사람이 그를 보고 열광하도록 꾸몄다. 로마시내에 불을 지르며 시를 읊기도 했다.

진시황제는 5차에 걸쳐 전국을 순행하면서 자신의 공적을 찬양하는 비석을 곳곳에 세운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장려한 건축물들을 세운 히틀러의 개인 우상화 작업은 인종 우열론으로까지 확대됐다.

개인 우상화는 1956년 2월 소련 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개인 숭배를 비판하면서 독재자의 특징으로 지목돼 왔다. 당 최고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 현상의 원형은 스탈린 시대에 형성·발전돼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과 현재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까지 영향을 줬다.스탈린 시대 이래 연극영화·음악회·무용 등 거의 모든 문화사업이 직·간접적으로 개인 우상화 작업으로 펼쳐졌다.

최근 외신의 짤막한 보도가 우리의 눈과 귀를 의심케 한다. 중앙아시아에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대통령(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62)이 개인 우상화 작업의 일환으로 월명(月名)과 요일명에 자신의 이름 등을 따서 강제 개명한다는 내용이다. 1월은 자신의 공식 호칭인 '투르크멘바시'로, 4월은 자신의 어머니 이름 등으로 바꾸도록 추진하고 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니야조프 대통령은 1985년 소련시대에 투르크메니스탄의 공산당 서기장이었으며 소련이 와해되자마자 재빠르게 민족주의자로 변신해 92년 대통령 선거에서 1백86만명의 유권자 중 '99.8%가 투표에 참가한 가운데 99.5%의 지지'를 얻었다. 경쟁자 없는 단독 입후보였으므로 민주적 선거와는 거리가 멀다. 더구나 그는 99년 의회투표를 통해 종신 대통령이 됐다. 국민에게 강요된 굴종의 역사는 기원전 알렉산더 대왕에서부터 칭기즈칸과 20세기 러시아의 붉은 군대에 이르기까지 장기간의 외침으로 점철돼 있다. 이제 니야조프도 스탈린식 개인 우상화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것일까.

최철주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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