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원일 '손풍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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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올해 봄에 화갑을 맞이한 김원일이 소설가라는 칭호를 얻은 지도 어언 36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김원일 문학 36년을 관통하는 문학적 화두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분단'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이러한 의미에서 작가 김원일에게 분단이라는 소재는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이 아닐까.

김원일이 최근에 발표한 중편소설 '손풍금'(『문학인』 2002년 여름호)은 분단을 소재로 한 또 한편의 역작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역사를 전공한 대학원생 경식과. 여든에 이른 경식의 큰 할아버지 박도수의 시점이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경식은 우연히 분단의 희생양으로 파란만장한 삶을 영위했던 작은 할아버지 박광수의 삶에 접근하게 되고, 급기야는 그의 생애를 주제로 하여 '인민 박광수 연구:분단시대 어느 사회주의자의 생애'라는 제목의 석사논문을 쓰기로 마음을 먹는다. 경식이 논문을 쓰기 위해서 박광수의 생애를 집요하게 복원하는 궤적은 한국현대사를 관통한 분단의 비극이 한 가족사에 드리운 서늘한 파노라마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여기 북한 땅 개천을 고향으로 둔 형제가 있다. 형은 6·25 때 월남해 새로운 가정을 꾸려가지만, 동생은 고향에 남는다. 5·16 쿠데타가 일어나기 몇 달 전 동생 박광수가 공작차 북에서 남으로 넘어와 형을 찾게 되면서, 형제의 인생은 '분단의 질곡'이라는 거대한 회오리에 휩싸이게 되거니와 '손풍금'은 바로 그들의 역정에 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줄기에 이른바 월남민들의 고달픈 생활사와 습속, 평생동안 사회주의자로서 북한 정권을 옹호했던 동생 박광수의 풍모가 점점이 박혀 있다.

21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감옥에 있었던 박광수와 유사한 삶을 선택했던 사람들을 일컫는 다양한 용어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전향장기수, 간첩, 신념 있는 사회주의자, 민족해방 투사, 꽉 막힌 원칙주의자…. 또한 그들을 서글픈 마음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의 안타까움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박광수와 그들의 가족에 대한 핍진한 묘사과정에서 작가 특유의 역사적 균형 감각은 빛을 발한다. 그래서 이념적으로는 급진적이되, '손풍금'이 상징하듯이 인간적으로는 매력적인 박광수의 캐릭터는 특정한 이념을 넘어 살아 있는 개성을 성취하는 것이다.

'손풍금'은 이제 이 땅의 작가들이 분단으로 인한 무의식적 억압이나 유무형의 검열에서 분명하게 탈피하고 있음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중한 문학사적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분단의 희생양인 동생 박광수를 반면교사로 삼았기에, 평생 동안 종교를 믿으면서 북한을 부정하던 박도수의 내면은 소설의 말미에서 대반전의 모습을 보이면서 동생에게 다가간다.

그는 이른바 해방공간 동안의 북한시절을 다음과 같이 아련하게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광수와 나의 청춘은 해방과 전쟁 사이 우리 가족이 한 울타리 안에 살았던 한 시절이었고, 그 한때는 분명 한여름날 소나기 끝에 보게 되는 오색찬란한 무지개, 그렇게 영롱한 시간대였다." 이러한 발언을 단지 역사적이며 정치적인 차원에서 이해한다면, 박도수의 내면에 대한 핍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위의 표현은 차라리 가족과 함께 보낸 격동적인 세월에 대한 그리움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손풍금'은 우리 소설이 견결한 사회주의자의 생애를 어떠한 이념적 편견도 없이 투명하게 묘사할 수 있으며, 해방공간의 북한사회를 아련한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권성우<문학평론가>

◇ 약 력

▶1942년 경남 김해 출생

▶66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어둠의 혼』『겨울골짜기』『마당깊은집』등

▶현대문학상·우경문화예술상·이상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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