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진영 꼬집는'지적 오락소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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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작가 소개를 먼저 하는 게 좋겠다. 최근 국내 번역된 슈바니츠의 인문서는 해박한 지식과 독특한 시각으로 주목을 받았다.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남자-지구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이 바로 그 책이다. 꽤나 두꺼운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의 소설 『캠퍼스』도 5백쪽에 달하니 두껍기는 매한가지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지적인 오락 소설'이란 명칭에 걸맞게 시작부터가 재미있다. 강의를 앞둔 소설의 주인공 한노 하크만 교수는 아내와 다투다 얼굴에 상처가 생긴다. 빌어먹을 아내의 고양이 때문이었다. 그런 그는 대학에서 제자와 내연 관계를 맺고 있는데 그가 앞으로 겪게 될 일이 소설의 줄거리를 이룬다.

함부르크대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하크만은 가정과 사회적 지위를 고려해 제자와의 내연 관계를 청산하려 한다. 그러다 연구실에서 마지막 정사를 하게 되는데 그만 이 장면이 공사를 하던 인부들에게 목격되고 만다. 이때부터 일은 꼬이기 시작한다. 그 제자는 마침 여대생이 성폭행 당하는 설정의 연극에서 주연을 맡게 되고 자신이 배역에 몰입했다는 사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실제 그런 경험이 있다는 거짓 선언을 하게 된다.

이 발언 한마디에 대학의 모든 구성원이 발벗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움직임의 동기는 물론 개인적 욕망. 언론 보도 이후 총장이 주목하자 부총장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뛰는 대학 징계위원회 의장, 자신의 정치적 입장에 맞춰 사실을 호도하는 대학 여성 담당관, 특종의 욕심 앞에 이야기 만들기에 앞장서는 기자….

『캠퍼스』는 한마디로 한 개인의 단순한 스캔들에 불과한 사건을 두고 온갖 복마전이 난무하는 학계의 양상을 노골적인 조소와 풍자로 그려내고 있는 소설이다. 나아가 소설은 진보를 주장하는 도덕 지상주의자들이 한 개인의 진실을 어떻게 묵살할 수 있는지를 공공연히 내비친다. 역자는 이를 두고 "68혁명 세대에 대한 비판"이라 평한다. 한국 진보 진영 내부의 자성론 등을 연상하며 읽어보면 어떨까 싶은 대목이다.

실제로 있는 함부르크대를 배경으로 삼았기에 독일 출간 당시 이 인물이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했을까를 가지고 한바탕 소동이 일었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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