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2005년 6월 수입쌀 시중 판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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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르면 내년 6월부터 할인점이나 동네 소매점 등에서 수입 쌀을 사들여 밥을 지을 수 있게 된다. 지금까지는 과자나 떡 등 가공용으로 수입 쌀이 사용됐다. 수입 쌀 시판량은 내년 28만가마(80㎏ 기준, 2만2557t)를 시작으로 매년 늘어나 2014년에는 153만가마(12만2610t)가 된다. 국내외 가격차를 감안해 정부가 수입 부담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시판 가격은 국산 쌀값과 비슷하거나 약간 쌀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10년간 쌀 시장 완전개방(관세화)을 더 미루기로 미국 등 9개 쌀 수출국과 합의했다고 30일 밝혔다.

1995년부터 올해까지 10년간 완전 개방을 미뤘는데 이를 10년 더 연장한 것이다. 대신 현재 20만5000t인 의무수입물량을 매년 단계적으로 늘려 2014년에는 지금보다 배가 많은 40만8700t을 수입하기로 했다. 관세화 유예기간 중에도 언제든 관세화로 전환할 수 있고, 합의대로 10년간 관세화를 미뤄도 2015년부터는 시장이 완전 개방된다.

이에 대해 전국농민연대는 "국민적 합의 없는 쌀 협상은 무효며 처음부터 다시 협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수입 쌀 판매=민간 업체가 직접 쌀을 수입할 수는 없고 농림부 산하의 농수산물 유통공사에서 일괄 수입한다. 또 아무 쌀이나 수입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입찰 때마다 제시하는 품종과 품질 등급 등을 충족하는 쌀만 수입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산 쌀과 지린(吉林)성 등 중국 동북 3성에서 생산된 쌀이 주로 수입되고, 쌀알이 길쭉한 태국산과 독특한 향이 나는 인도산 향미 등도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제시한 조건에 맞는 쌀 중 싼 것을 수입하기 때문에 고가의 일본 쌀은 수입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수입된 쌀은 공개 입찰을 통해 국내 쌀 도매상에 판매된다. 몇㎏짜리로 포장해서 팔지, 제품명을 무엇으로 할지는 국내 업체가 자율적으로 결정한다. 그러나 포장지에 어느 나라 쌀인지를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 또 현미 상태로 수입되기 때문에 마지막 도정은 국내 업체가 해야 한다. 시판 초기에는 유통업체 등이 농민단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일반 매장보다는 도매상을 통해 식당용으로 주로 팔릴 가능성이 크다.

◆ 향후 절차=정부는 30일 세계무역기구(WTO)에 협상 결과를 담은 이행계획서 초안을 제출했다. WTO는 이 안을 토대로 협상 결과가 WTO 규정상 문제가 없는지를 검증한다. 검증은 3개월가량 걸린다. 검증이 끝나면 최종 이행계획서를 국회에 제출하고 비준을 받게 된다. 허상만 농림부 장관은 "국회가 비준을 하지 않으면 관세화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최종 입장은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 구조조정 시급=정부는 시장을 완전히 열어 구조조정의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수입에 따른 영향을 줄이면서 구조조정의 시간을 버는 쪽을 선택했다. 이 같은 의도를 살리려면 당장 내년부터 추곡수매제 폐지 등 농업 관련 제도와 정책을 확 바꿔야 한다. 전문가들은 지금처럼 쌀값을 시장에 맡기지 않고 국회가 결정하는 체제가 지속되면 나중에 시장을 완전 개방할 때 더 큰 충격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영일 서울대(경제학) 교수는 "관세화했을 때와 똑같은 강도의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농업은 더 어려워질 것"이라며 "국회도 눈앞의 정치적 이익에 매달리지 말고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법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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