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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산업 키우면 ‘일석삼조’ 효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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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우리나라는 아직 열 명 중 두세 명만 와인을 즐기는 단계다. 정보기술(IT) 확산이론을 빌려 표현한다면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의 끝자락 아니면, 1차 성숙기(First Follower Stage)의 초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성장 가능성도 크지만, 실생활에서 와인을 자주 접하지 못한다는 사람도 제법 많은 편이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수입 와인과 자국 생산 와인의 판매비율이 5.5대4.5 내지 5대5 정도다. 일본의 전통주인 사케 외에도 자국 내에서 생산·소비되는 와인의 규모가 수입 와인 시장 규모에 육박한다는 의미다. 적정한 규모의 소비시장이 있다면 충분히 그 나라 내의 농업과 가공업 기반만으로도 와인이 산업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일본이 보여주는 셈이다.

일자리 만들기에 주력하는 정부가 와인산업에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와인산업은 농업이자 가공업, 여기에 서비스업(음식료·유통·관광특산품 등)의 특성을 모두 갖는다. 1·2·3차 산업의 복합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산업 간 연관효과도 크다. 해외 와인산업의 발전사와 관련 제도를 살펴서 이를 국내에 적용한다면 우리 농민의 새로운 미래 먹을거리를 만드는 데 중요한 한 축을 국내 와인산업이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물론 기후조건 때문에 국산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와인의 넓은 뜻을 포도뿐 아니라 과일과 곡류를 발효시켜 만든 주류라고 생각한다면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 넓게 보면 막걸리·복분자주·머루주 등도 와인의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복분자와 머루에는 건강에 좋다는 폴리페놀이 포도보다 훨씬 많이 들어있다는 연구 보고도 있다. 국산 과실과 곡류를 바탕으로 한 민속주 산업 육성이 제대로만 이뤄진다면 농가 수입 증대는 물론, 국민 건강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동안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부 민속주를 비롯한 와인산업을 띄우기 위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민속주의 세계 명주화, 포도 특구 지정 및 양조시설 지원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소비자 관점에서 원산지 증명 등의 품질보증제도 확립과 소비시장 구축을 위한 유통·마케팅 측면에서의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최고 품질의 원재료를 얻기 위한 과실 재배법이나 최고의 술을 만들기 위한 양조법 연구개발 등은 최소 10년 이상의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적어도 이들 정책은 특정 정권의 관심 속에 생겼다가 사멸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정보통신·바이오 등 첨단산업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을 때 주류처럼 의식주를 위한 산업 중에서도 소득 수준이 올라갈수록 발달하게 되어 있는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수입 와인이 우리 음식료 문화의 고급화와 다양화를 이끌어 왔지만, 이제는 국내 와인산업을 육성할 때가 됐다.

이철형 ㈜와인나라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