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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군함이 폭침됐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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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천안함은 과학과 정의의 문제다. 배는 어뢰 폭발로 부서졌으며 추진체를 남긴 자가 범인이다. 이를 인정하는 게 과학이요, 46명을 죽인 살인자를 지목하고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게 정의다. 명백한 사실을 외면하면 비(非)과학이요, 비겁이나 소리(小利) 때문에 살인자를 지목하지 않는 건 불의다.

어느 국가나 문명의 척도는 비과학과 불의를 통제하고 과학과 정의를 발흥시키는 데에 비례한다. 중화인민공화국은 1949년에 인류 앞에 등장했다. 중국은 문화대혁명(1966~76년)이란 비과학과 불의로 인류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중국은 개혁과 개방을 통해 새롭고 거대한 문명으로 다시 등장했다. 고대 황하(黃河) 문명과 중국 문명이 21세기에 화려하게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세계가 경제위기에 빠질 때마다 중국은 구명줄이 되고 있다.

그런 중국이 천안함 사건으로 문명의 위기에 빠졌다. 집단살인의 유력 혐의자를 안방으로 불러들여 남한 내에서 분노가 거세지자 중국은 바른 방향으로 행동할 것을 약속했다. 지난 5월 28일 원자바오 총리는 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나 “중국은 책임 있는 국가”라며 “중국은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한국이 다른 나라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를 매우 중시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끝내 북한 어뢰라는 과학과 북한 문책이라는 정의를 외면했다.

중국 관리들은 남한 내 반대세력을 언급했다고 한다. 제1 야당이 대북 규탄 결의안에 반대하고 참여연대가 안보리에 ‘불신의 서한’을 보낸 사실을 거론한 것이다. 중국에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은 큰 일을 결정할 때 누구를 따르는가. 다수의 합리 세력인가, 아니면 소수의 미망 세력인가. 톈진 앞바다에서 중국 군함이 침몰했는데 미국 어뢰의 추진체가 발견됐다고 치자. 그리고 중국 내 반(反)정부 그룹과 소수민족 저항세력이 “미국 소행이라고 어떻게 믿는가”라고 외친다고 하자. 어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이들의 주장을 들어 공격자를 지목하고 문책하는 일에 주저한다면 중국은 수긍할 수 있나.

이스라엘 특공대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로 가는 보급선에서 수색작전을 벌이다 저항하는 민간인 10명을 죽였다. 군사 테러가 아니라 그저 논란이 있는 군사행동이었다. 그런데도 유엔 안보리는 지난 6월 1일 의장성명에서 이스라엘의 무력사용을 비난하고 배와 사람들을 즉각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물론 중국도 찬성했다. 테러가 아닌데도 사람이 죽었다는 이유로 그토록 규탄하면서 왜 46명을 죽인 테러에 대해선 범인을 지목하지 않는가. 중국이 말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과학과 정의를 중시하는 많은 나라가 국제조사단의 결과를 인정하고 북한을 규탄했다. 미국·일본·러시아 등 G8, 유럽연합(EU), 그리고 아시아·중남미 대부분이 그러했다. 중국은 이들의 대열을 이탈해서 다른 길로 갔다. 이번 일은 중국의 정신사(精神史)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다. 46명의 수병과 함께 침몰된 군함의 이름에 천안(天安)이 들어 있다. 천안은 하늘의 평화이자 하늘의 도리다. 유교문화권에서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북한과의 관계라는 지상의 소리(小利)로 하늘의 뜻을 외면하면 그것은 문명의 길이 아니다.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