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 선심성 인사·당선자에 업무 비협조 지자체 인수 놓고 마찰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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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6·13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업무 인수·인계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잡음이 일고 있다. 물러나는 단체장들이 막판 선심성 인사를 단행해 당선자측과 마찰을 빚기 일쑤인 데다 새 단체장 취임에 따른 인사태풍과 사업 재조정이 뒤따를 것으로 보여 지방행정은 실종 상태다. 다음달 1일자로 전국 광역단체장 16명 가운데 9명, 기초단체장은 전체(2백32명)의 57%인 1백33명이 바뀐다.

◇막판 선심성 인사=임창열(林昌烈)경기지사가 지난 17일 부이사관급 1명, 서기관급 3명을 전보하고 사무관 7명을 서기관으로 승진시키는 등 모두 21명의 인사를 전격 단행한 것과 관련해 손학규(孫鶴圭)당선자측은 19일 '인사조치 취소 요청서'를 도에 제출했다. 孫당선자는 이 요청서에서 "당선자가 동의하지 않은 인사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광주시도 최근 고재유(高在維)시장과 같은 고향 출신이 포함된 기술직 공무원 2명을 승진시키고 1명을 전보했다.

또 광주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 시장후보 경선 때 高시장을 도와준 L시의원을 임명하려다 박광태(朴光泰)당선자측에서 "비상식적인 처사"라며 강력히 반대하자 임명을 보류하기도 했다. 기초단체장의 '내 사람 챙기기'도 극심하다. 현 단체장이 선거에서 떨어진 전남 여수시와 고흥군 등은 최근 대규모 인사를 실시해 당선자측의 비난을 샀다.

충남 천안시는 당선자를 위한 취임준비팀을 발족하면서 선거기간 동안 당선자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진 직원을 포함시켜 눈총을 받고 있다.

행정자치부는 불출마했거나 낙선한 단체장이 남은 임기 동안 인사와 관련, 당선자와 마찰이 없도록 하라는 지침을 이달 초 시달했었다.

◇어수선한 자치단체 분위기=서울시내 모 구청장은 낙선 뒤 오전에만 잠시 출근하고 대부분 자리를 비우고 있다. 간부들도 당선자의 움직임에만 촉각을 곤두세워 업무에 대한 결재를 미루고 있다.

구청장이 바뀌는 서울시내 다른 구청도 현 구청장에게 줄을 선 공무원들에 대한 '살생부'가 있다는 소문으로 뒤숭숭하다. 현 구청장 측근인 상당수 간부들이 당선자측에 협조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인수·인계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구청도 있다.

서울시내 모 구청 관계자는 "간부들은 몸을 사리고 직원들은 눈치만 보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기존 업무가 지속될지 여부를 몰라 불안해 하는 경우도 있다. 韓대수 청주시장 당선자는 "각종 행사를 재검토해 지역 상징사업만 빼고 낭비성 행사를 없애겠다"고 밝혀 국제항공엑스포·공예 비엔날레 등이 폐지될 가능성이 크다.

◇대책=광주·전남자치연대 민형배 집행위원장은 "선거운동 시작부터 다음 당선자 취임까지 단체장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조례 제정 등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충북대 강형기(행정)교수는 "막판 봐주기식 인사는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조직 내 갈등을 불러올 수 있다. 또 신임 단체장이 자신만의 정책을 펴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지역발전이라는 큰 테두리 내에서 전임자의 사업을 모두 무시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조한필·안남영·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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