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영화 세계 중심권 진입-'마리 이야기' 안시 페스티벌 대상 수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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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리 이야기'가 이번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것은 1967년 국내 최초의 극장용 애니메이션 '홍길동'(감독 신동헌)이 만들어진 이후 35년만의 최대 경사다. 지금까지 하청 제작국 정도로만 알려졌던 한국이 창작물 원산지의 면모를 과시하게 됐기 때문이다.

안시 페스티벌은 국제 애니메이션 필름협회(ASIFA)가 공인한 세계 4대 페스티벌 중 가장 큰 대회로, 홀수년마다 열렸었으나 애니메이션 산업 규모가 커지면서 97년부터는 매년 개최돼왔다. 영화제뿐 아니라 애니메이션 마켓인 미파(Mifa)도 함께 열리는 것이 특징이다.

이 대회 본선 수상을 위한 국내 감독들의 시도는 99년 이성강 감독의 단편 '덤불 속의 재'의 본선 진출 이후 계속돼 지난해 단편 7편(경쟁부문 2·비경쟁부문 5)이, 올해는 총 5편(경쟁 2·비경쟁 3)이 본선에 진출하는 등 좋은 성적을 보여 수상 가능성을 크게 해왔다.

지난해 장편부문 대상은 빌 플림튼 감독의 '뮤턴트 에일리언'이 차지했으며 '나무를 심는 사람'(87년·프레데릭 백),'붉은 돼지'(93년·미야자키 하야오), '키리쿠와 마녀'(99년·미셸 오셀로) 등 역대 수상작들은 이미 '고전'으로 대우받고 있다.

이번 '마리 이야기'는 일본 린타로 감독의 '메트로폴리스', 룩셈부르크 티에리 쉬엘 감독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등 쟁쟁한 4편의 작품을 누르고 대상을 거머쥐었다.

『애니메이션 영화사』의 저자인 홍익대 조형대학 황선길(63)교수는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선의 예술로 알려져 왔으나 이 작품은 선을 배제하고 (색이 있는)면으로 구분한 새로운 시도가 눈길을 끈다. 또 지금까지의 원색 위주에서 탈피, 중간색을 많이 사용해 환상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것도 강점"이라고 수상 원인을 분석했다.

지난해 한국이 본선에 대거 진출했고 최근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이 외형적으로 급성장한데 힘입어, 2003년도 안시 페스티벌에서 한국 특별전을 추진하자는 물밑 작업이 한국문화컨텐츠진흥원 등을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이번 수상으로 내년이 '한국의 해'로 지정될 가능성은 훨씬 커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수상은 관련학과 재학생 및 독립 작가들에게 새로운 희망이 됐다. 90년 당시 공주전문대에 만화학과가, 96년 세종대에 만화애니메이션 학과가 설치된 이래 지금까지 전국에 60여개 관련학과가 개설됐으며 매년 약 3천여명에 달하는 제작인력이 애니메이션 제작현장·광고 제작사·독립 스튜디오 등에 진출, 작품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역시 4대 페스티벌 중 하나로 오는 18일부터 5일간 열리는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페스티벌에도 한국작품, 9편(경쟁 6·비경쟁 3)이나 본선에 진출함에 따라 새로운 수상 소식에 대한 기대도 부풀어 오르고 있다.

국내 다른 후속작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컴퓨터로 만든 극장용 3D 애니메이션 '엘리시움'이 해외에서 먼저 좋은 반응을 얻고 있고, 1백억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양철집의 야심작 '원더풀 데이즈' 역시 한국 애니메이션사를 새로 쓰기 위한 준비 작업이 한창이다.

올 1월 국내 개봉됐던 '마리 이야기'는 아름다운 영상미에도 불구하고 다소 단조로운 스토리 구조로 인해 흥행에서 재미를 보지는 못했다. 이번 대회 수상을 계기로 한국 애니메이션의 수준을 다시 한단계 높이기 위해서는 보다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가는데 더욱 많은 힘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정형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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