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3>제101화 우리서로섬기며살자: 32. 고달픈 한국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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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한국 생활에 적응을 잘 하는 쪽은 아내였다. 방 세 칸인 초가집에 열네 식구가 살았으니 그 불편함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우리 부부가 쓴 방은 어찌나 좁았던지 미국에서 가져온 전자제품 몇 가지와 책, 옷을 넣고 나니 둘이 겨우 발을 뻗을 공간만 남았다. 나는 온돌이 딱딱했는데 아내는 방바닥이 따뜻하다며 좋아했다.

한국생활 둘째날, 잠을 깨어 보니 아내는 벌써 부엌으로 나가 불을 때고 있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밥을 지을 줄은 몰라도 나무를 태우는 일쯤이야 싶었던지, 아내가 자청한 일이었다.

김치와 고추장밖에 없는 식탁은 우리 부부에겐 고통이었다. 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특별히 들기름으로 계란 프라이를 해주셨지만 들기름 냄새가 역하게만 느껴졌다. 아내가 못 먹는 건 그렇다쳐도 나까지 밥을 잘 못먹으니 가족들은 섭섭한 눈치였다. 화장실을 비롯해 모든 것이 문제였다.

마당 끄트머리의 변소는 판자 두 개를 걸쳐놓은 아슬아슬한 곳이었다. 하루는 트루디가 큰형님이 안에 있는 줄도 모르고 입구의 가마니를 들췄다가 난리가 났다. 그때부터 우리 가족들은 누가 오는 기척만 보이면 '큼큼' 기침소리를 내느라 바빴다. 중산층 가정에서 별 어려움 없이 자란 아내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현실이었다.

미국에선 매일 샤워를 했던 우리 부부가 샤워를 못하게 된 것도 고역이었다. 궁여지책으로 물을 데워 큰 대야에 담아 방에 들여놓고 스펀지로 비누를 칠한 뒤 수건으로 닦았다.

그때 우리 수중엔 미국 친구들이 선교자금으로 모아준 돈이 꽤 있었다. 아내가 시골에서 못살겠다고 했다면 그 돈을 사용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변에서 미국 부자와 결혼했는데 왜 시골에서 사느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아내는 자신이 선교사로 왔기 때문에 고생은 당연하다면서 조금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6개월간 어머니와 함께 초가에서 살았는데 아내는 지금도 그때가 즐거웠다고 추억한다.

나는 귀국 다음날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한국에서 활동하는 미국 선교사들을 만나고, 여러 교회를 다녀봤다. 최선의 선교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내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미8군과 수원 10전투 비행단 등에서 나를 초청했기 때문에 나는 곧바로 설교를 다녀야 했다.

조카들이 아내와 나이가 두세살밖에 차이 나지 않아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조카는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아내에게 영어를 배우면서 한국말을 가르쳐 주었다. 나는 일부러 아내와 가족들의 대화를 통역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아내가 한국말을 빨리 익히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아내는 처음에는 그런 내가 원망스러웠지만 나중엔 고마웠다고 말했다.

다만 밤에 둘이 있을 때면 영어로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아내의 외로움을 달래 주었다. 나는 나대로 아내와 대화함으로써 나의 영어실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때만 해도 미국 여자를 구경하려고 우리 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 집이 있던, 지금의 수원시 지동은 당시엔 못골로 불렸다. 그런 촌에 미국 여자가 왔으니 얼마나 신기했겠는가. 나를 찾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시 수원엔 이승만 대통령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한국을 하나 살 정도의 부자고, 김장환 목사의 부인은 한국 같은 나라를 세 개 정도 살 수 있을 정도로 부자라는 소문이 났다.

배 일곱척에 짐을 가득 싣고 왔다는 소문도 돌았다. 당시 수원에서 자가용을 가진 사람이라곤 고 최종현 SK그룹 회장 정도였는데 내가 포드 픽업트럭을 가져와 그런 소문이 난 것 같았다. 당시에 일확천금을 노리려면 '종교 달러'를 잡으라는 말이 있었다. 외국의 선교단체들이 지원을 많이 하니까 그런 말이 퍼져나간 것이다.

한번은 수원농림 동창 2백여명이 나를 환영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 앞에서 나는 "예수 믿으라"는 말만 역설했다. 나와 절친한 친구로 시드니 총영사를 지낸 안세훈은 "반가운 마음에 찾아왔겠지만 뭐 좀 생기는 거 있을까 해서 온 친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내가 계속 "예수 믿으라"고 전도했더니 다 떠나고 안세훈과 SK 부회장을 지낸 친구 최종관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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