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극우 정치인 피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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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총선을 아흐레 앞둔 네덜란드에서 극우파 인기 정치인인 핌 포르타인(54)이 피살돼 유럽 전역에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포르타인은 6일 암스테르담 남동쪽 20㎞ 지점에 있는 힐베르숨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 주차장에서 여러발의 총탄을 맞고 사망했다. 경찰은 이날 밤 32세의 백인 동물보호운동가를 용의자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한 환경단체 회원으로 알려진 용의자는 모피 생산용 동물 사육을 허용하자는 포르타인의 주장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범인이 여섯발의 총탄을 발사,이 가운데 세발이 포르타인의 머리와 목·가슴에 명중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프랑스 대선을 계기로 유럽 각국에서 극우파의 부상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가고 있는 가운데 발생해 주목되고 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유럽 각국 지도자들은 일제히 우려를 나타내면서 폭력보다는 투표를 통해 정치적 이견을 해소할 것을 촉구했다. 총선에 대비해 지방에서 유세 중이던 빔 코크 네덜란드 총리는 일정을 중단하고 헤이그로 급거 귀환했다. 코크 총리는 "네덜란드 민주주의에 커다란 비극"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그러나 15일로 예정된 총선은 차질없이 치러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안보담당 집행위원은 "끔찍하다"고 규탄하면서 "두말 할 것 없이 나는 이러한 수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네덜란드인과 충격을 같이 한다"면서 "정치인들의 감정이 격해져도 이를 표현할 장소는 투표소뿐"이라고 역설했다.

사회학 교수 출신인 포르타인은 빡빡 깎은 머리에 이탈리아제 고급 양복을 즐겨 입고 외출시에 운전사가 달린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녔으며 항상 다른 사람들을 무식하다고 깔보는 등 거만하게 행동했다고 측근 인사들은 전했다. 그는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내세워 동성애를 인정치 않는 이슬람에 특히 반대해 왔다.

포르타인은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한 네덜란드 헌법 제1조를 철폐할 것을 주장할 정도로 반(反)이민주의자며 프랑스의 장 마리 르펜 국민전선(FN) 당수처럼 극우적 선동 구호로 현실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파고들어 최근 급부상했다.

'네덜란드는 만원(滿員)이다'는 등의 슬로건을 내세운 그는 총선을 앞둔 네덜란드 국민들 사이에 '포르타인 현상'이라 불릴 정도의 폭발적 인기를 누려 왔다. 그는 특히 이슬람교를 '퇴영적 종교'로 지칭하는 등 이슬람계 주민을 자극하는 언동을 일삼아 왔다.

그는 지난 3월 로테르담 지방선거에서 자신이 창당한 '핌 포르타인 리스트'를 이끌어 35%의 득표율을 기록하는 대성공을 거뒀다. 포르타인당은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15% 정도의 지지율을 확보, 이번 총선에서 전체 1백50석 가운데 26석 정도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돼 왔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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