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금융’도 세계 4강 갈 수 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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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호 30면

지금 전 세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후유증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에게는 1997년 말 동아시아 외환위기가 더 큰 어려움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섣부른 대외개방 때문에 IMF로부터 구제금융까지 받는 등 나라 곳간이 거덜날 지경이 되었으니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세계 경제가 견고한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국내 경제 또한 정상 상태로 금방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이후 새로운 명제가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다. 이른바 ‘경쟁’과 ‘시장에 의한 규율(market discipline)’이라는 원칙이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온정주의와 투명성이 결여된 밀실 정책은 설 자리를 잃는 듯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김우진의 캐나다 통신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은 어느새 쏠림 현상으로 둔갑했고, 시장에 의한 규율은 시장 안정(market stability)이라는 명분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이뤄졌던 정부의 임시방편적 조치나 새로운 수익원으로 인식해 너나없이 뛰어들었던 시장이 기쁨도 잠깐, 후폭풍으로 시장 참가자들을 고생하게 만들었다. 신용카드 시장, 주택담보대출 시장, 소호(SOHO) 시장이 그러했다. 지금 너나 할 것 없이 신천지로 여기며 진출하고 있는 해외 비즈니스 또한 지옥불이 될 수 있다. 어설프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다.

게다가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 세계 경제의 블록화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안 된다. 작금의 글로벌 위기는 유로존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지만 역사를 거스를 수는 없다. 몇 년이 지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유럽은 다시 뭉칠 것이다. 아시아도 이에 질세라 암중모색을 계속하고 있으며, 중국과 일본은 헤게모니 다툼에 난리법석이다. 금융의 수렴화(financial convergence)는 이미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고객은 더 이상 자기가 상대하는 금융회사가 은행인지, 증권회사인지, 보험회사인지에 관심이 없다. 상품과 서비스만이 브랜드의 가치를 말해줄 뿐이다. 이 와중에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의 강도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전환기의 금융산업에는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상생협력 모델’은 우리에게 희망의 포인트를 보여준다. 이는 정부 주도의 금융기능은 물론이거니와 시장경쟁을 넘어서는 개념이다. 효과적 정책수단이나 독립산업으로서의 금융 위상에 그치지 않는다. 즉 창의성, 스피드, 인력이라는 키워드를 바탕으로 국가경쟁력 제고 및 성장 동력 확충에 이바지한다. 상생협력 모델은 ‘규모의 경제’ ‘수평적 협력의 경제’ ‘수직적 협력의 경제’ 등 세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규모의 경제 영역은 사실 진부한 느낌마저 드는 고전적 이슈다. 선진 금융산업에서는 이미 그 혜택을 누리고 있다. 예를 들어 덴마크의 4개 은행은 IT시스템을 같이 쓴다. 프랑스의 양대 산맥인 크레디트 아그리콜(Credit Agricole)과 비앤피 파리바(BNP Paribas)는 후선업무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속사정은 다르다. 현행법에 따르면 고객들은 하나의 콜센터로부터 은행, 증권, 보험 서비스를 동시에 받을 수 없다. 콜센터를 통합해 운영할 수 없는 것이다. IT시스템 또한 금융영역별로 별도 설치돼 있어야 한다. 하나의 지주회사 우산 아래 있는 금융 자회사들이 시스템을 따로 두는 이유다. 시스템 공동 구축 및 활용이 더디니 비용 절감이 어렵고 이는 금융 소비자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수평적 협력의 경제 영역은 공동대응을 통한 국내 금융그룹의 역량 제고를 의미한다. 글로벌 네트워크 진입을 위한 공동 노력이 대표적인 예다. 즉, 해외 유수의 은행을 인수하는 데 여러 은행이 포트폴리오 투자자로 참여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 선진 금융회사의 지분을 보유하게 되면 두 자릿수는 아니더라도 3~4%의 적정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어설픈 규모의 금융회사를 인수한 후 수익은커녕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추가 자본을 투입하는 경우보다 훨씬 낫다고 본다. 금융회사 간 상호 지분보유는 출발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수직적 협력의 경제 영역은 새로운 금융기능 정립을 의미한다. 사회적 책임기업이라면 단기 수익의 지향이나 무분별한 자회사 진출을 자제하고 결합(clustering)을 통한 네트워크 형성과 아웃소싱 모델을 적극 채택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에 보험가입률이 사상 처음으로 2년 연속 감소했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마음이 착잡했다. 해약이 늘면서 저소득층의 보험가입률이 큰 폭으로 떨어진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한다. 서민의 살림살이가 그만큼 힘들다는 의미인데, 각종 서민금융 활성화 정책은 왜 제대로 ‘활성화’되지 못하는가. 상생협력 모델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상호 간의 경쟁관계를 넘어 산업 내 각자의 역할 확대를 모색할 때 우리나라 금융산업은 한 단계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금융산업에서도 듣고 싶어지는 구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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