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Special] 인터뷰 - 2008년 G8 정상회의 총요리장 나카무라 가쓰히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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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다. 여느 정상회의에서나 주최국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대목 중 하나가 만찬이다. 정상들에게 제공하는 음식은 귀한 손님에 대한 접대이자 동시에 자국의 음식과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절호의 기회 다. 일본은 2000년 오키나와(沖繩), 2008년 홋카이도(北海道) 도야코(洞爺湖)에서 두 차례 G8 정상회의를 치렀다. 도야코 정상회의 총요리장을 지낸 나카무라 가쓰히로(66·메트로폴리탄 에드몬트 호텔 명예총요리장)는 일본인 최초로 미슐랭 가이드 별을 받은 그랑셰프다. 나카무라 요리장과 오키나와 정상회의의 부(副) 버틀러로 활약한 모리키 아키라(守木晃)를 각각 만나 음식 준비 과정과 각국 정상들의 반응, 에피소드 등을 들어봤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 도야코 정상회의 음식을 한마디로 소개한다면.

“홋카이도의 자연이다. 홋카이도는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섬이다. 일본 최고의 갑각류와 드넓은 목장에서 자란 소와 양이 있다. 감자와 옥수수 등 홋카이도의 야채도 일본을 대표할 만한 식자재다. 원래 음식이란 그 지역의 풍토를 반영하는 것이다. 회의 장소인 홋카이도의 흙과 바다에서 자란 식자재로 홋카이도의 정신을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정상회의 테이블에 자연의 축복,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이를 위해 두 달간 홋카이도 식자재 여행을 다녔다. 양식만 내놓은 첫날 워킹런치 외에는 소바와 스시 같은 순수 일식을 코스에 넣어 양식과 일식의 절충요리로 구성했다.”

● 프랑스 요리 전문가인데, 일식과 어떻게 절충했나.

“만찬은 프랑스 요리와 일식의 비율을 반반으로 했다. 동서의 융합, 일종의 콜래보레이션 코스였다. 내가 모든 메뉴를 감수했지만 일식은 식자재부터 조리방법까지 일식 전문가가 만들었다. 만찬은 ‘깃초(吉兆)’가 맡았다.(※1930년 문을 연 일본의 대표적인 요정. 1970년대부터 일본에서 열린 각종 정상회의 때마다 음식을 담당해 왔다) 만찬장을 호리고타쓰(바닥에 앉아 아랫부분이 다리를 내릴 수 있도록 파여 있는 테이블)로 만들어 전통적인 분위기를 연출한 것도 호평받았다.”

● 도야코 회의는 아프리카 정상과 한국·인도 등 G22 확대회의로 치러졌는데.

“아프리카 10개국, 한국과 인도, IMF 총재, 유엔사무총장 등이 가세했다. 문제는 각국 정상들이 각기 다른 호텔에 분산 숙박했던 다른 정상회의와 달리 도야코 회의는 도야라는 호수 위에 세워진 윈저호텔에서 전원이 묵었다는 거다. 그러다 보니 만찬 외에도 워킹 오찬, 워킹 만찬, 심지어는 워킹 조찬까지 총 11차례의 공식 식사를 모두 맡아야 했다. 이뿐인가. 정상들이 만찬을 하는 동안 각국의 정상 보좌관들은 옆방에서 실시간으로 정상들의 발언과 대화를 챙긴다. 컴퓨터와 서류 등 각종 자료를 찾아가면서 식사하기 때문에 보좌관들의 테이블에는 나이프가 없다. 모두 한입 크기로 잘라 포크로 찍어 먹을 수 있도록 내놔야 한다. ”

● 가장 어려웠던 점은.

“국가와 문화, 종교, 체질 등에 따라 식단을 차별화하는 거다. 특히 종교문제는 세심하게 신경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음식에 돼지고기 조각 하나, 돼지기름 한 방울도 용납되지 않는다. 방심할 수 없는 게 손님 접대다. 일부 수행원들 중에는 채식주의자도 있었고, 다이어트 메뉴를 신청해온 사람도 있었다. G8 정상의 경우 각국 대사관을 통해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고, 이를 바탕으로 일람표와 메뉴를 완성했다. 그런데 행사 직전에 팩스가 밀려 들어왔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보내온 음식 주의사항들이었다. 메뉴는 이미 정해진 뒤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퍼즐처럼 짜맞추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메인요리만 식재료와 조리방법·소스 등을 달리해 총 6∼7종류가 만들어졌다. 전채요리부터 디저트까지 모든 메뉴를 차별화한 걸 감안하면 수십 가지 다른 메뉴를 만들었다. 말이 단체 만찬메뉴지, 개인별 맞춤메뉴를 내간 셈이다.”

● 리허설도 해봤나.

“부분별, 총 리허설을 했다. 하지만 음식이라는 게 살아있는 것이다 보니 매번 상황이 달라진다. 당일 행사 때는 돌발변수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처음 하는 심정으로 준비를 하게 된다. 작은 실수 하나라도 있어선 안 된다는 긴장감 때문에 주방을 떠날 수가 없었다. 정상회의 기간은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잠자리에 드는 상황이었다.”

● 일식을 싫어하는 정상은 없었나.

“없었다. 바로 일식이 세계화된 덕이다. 음식의 세계에서 일식은 안심·안전·건강이라는 이미지다. 야채를 많이 사용하는 점이 건강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날생선을 먹는 생선회나 스시에 거부감을 갖는 서양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고급음식으로 통한다.”

● 정상들 이야기를 해보자. 특별 식단을 요구한 사람은 없었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첫날 배탈이 났다고 했다. 워킹 런치 때 제공된 양식 대신 안심 스테이크를 구워 달라고 하더라. ‘배탈이 났는데, 스테이크를 먹겠다고?’ 요리사들은 깜짝 놀랐다. 유럽사람들은 배탈이 나면 안심 스테이크를 슬쩍 익혀 먹기도 한다. 홋카이도 쇠고기 안심 스테이크를 ‘레어’로 내갔다. 함께 가져갈 리조토를 만들다 조금 일식으로 변화를 주고 싶어졌다. 그래서 흙으로 빚은 일본 전통 냄비에 고슬고슬 흰 쌀밥을 지었다. 밥에 얹을 파르미지아노와 올리브오일, 소스는 종지에 담아 함께 보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그날 저녁 호텔 맨 위층에 있는 미슐랭 가이드 별 2개짜리 프랑스식당 ‘미셸 브라스’에서 식사를 하기로 돼 있었는데, 그곳 메뉴를 마다하고 낮에 먹은 스테이크와 쌀밥을 다시 찾았다. 프랑스인 셰프가 내게 도움을 요청했고, 내 주방에서 스테이크와 쌀밥을 지어 올려 보냈다.”

● 정상들에게 내는 음식이다. 안전문제도 걱정이었을 텐데.

“미국 안전요원들은 조리장에 불쑥불쑥 들어와 요리사들을 당황시켰다. 그래서 ‘주방 입구까지는 들어와 음식 만드는걸 봐도 좋다’는 출입규칙을 만들었다. 대신 우리 요리사 외에 외부인 출입은 엄금했다.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의 경우 도착 하루 전에 수행원들이 먼저 호텔에 도착했는데, 느닷없이 ‘주방을 하나 내놓으라’고 하더라. ‘대통령의 요리는 우리가 직접 만들겠다’며 러시아에서 요리사들을 데려온 것이다. 안 된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그래서 그들을 데리고 주방을 다 보여주고, 외무성을 통해서도 불가 입장을 강하게 전달했다. 그러자 러시아 측에서 ‘이 호텔에 있는 모든 메뉴를 보여달라. 우리 정상은 다른 정상들과 함께 음식을 먹지 않는다. 방에서 룸서비스를 시킬 테니 24시간 대기하고 있으라’고 요구했다.

● 정말 그렇게 해줬나.

“당연히 거절했다. 대신 일식·중식·양식을 적당히 안배해 우리가 특별 메뉴를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다른 나라에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부시 대통령도 전속 요리사를 대동하고 왔었다. 그가 매일 아침 우리 주방에서 대통령의 오트밀을 만들어 갔다. 정말 맛없어 보이는 오트밀이었다. (웃음) 그런데 그 냄비가 정말 더러워서 볼 수가 없었다. 보다 못해 내가 새 냄비를 하나 내줬다.”

● 가리는 음식이나 특별메뉴 등 정상들의 주문도 많았을 텐데.

“의외로 그렇지 않다. 각국 대사관을 통해 받은 정보들이 꼭 100% 맞는 건 아니더라. 예컨대 부시 대통령의 경우 다이어트 때문에 기름이 많은 고칼로리 음식도 안 되고 양도 많아선 안 된다고 꼼꼼한 주의사항을 제시해 왔다. 와인도 마시지 않고 사시미나 스시도 안 된다고 돼 있더라. 그런데 주방으로 돌아온 부시 대통령의 접시는 항상 비어 있었다. 와인도 잘 마시고, 심지어는 도착한 날 방에서 룸서비스로 스시를 주문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정상회의를 마치고 공항으로 향하던 중 영국 대표단 일부가 묵은 호텔(홋카이호텔)에 들러 직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카레라이스를 먹고 귀국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윈저호텔의 베이커리를 구경하다 정상단 기념 촬영 때 12분이나 지각한 에피소드가 일본 언론에 소개됐다.)

● 당시 부시 대통령 생일파티가 화제가 됐다.

“7월 6일은 부시 대통령의 생일이었다. 케이크와 생일상을 준비해 달라는 특명이 급하게 떨어졌다. 분명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생일 케이크를 받아봤을 터였다. 뭔가 색다른 선물을 하고 싶었다. 미국 대사관으로부터 부시 대통령의 취향과 약력을 입수했다. 그래서 만든 게 야구 케이크였다. 파티시에(제빵사)에게 부시 대통령이 구단주로 있던 텍사스 레인저스 로고를 넣은 야구장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라고 지시했다. 점수판은 6회 말 현재 3대0으로 텍사스 레인저스가 뉴욕 양키스를 이기고 있는 상황을 연출했다. 케이크를 방에 들고 가는 직원들에게는 텍사스 레인저스 유니폼을 입히고 모자를 씌웠다. 부시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너무 기뻐하며 나를 찾았다. 내가 파티시에를 데려가 소개하자 그는 “네가 케이크맨이냐”며 파티시에를 껴안았다. 생일상엔 홋카이도 쇠고기로 대통령의 고향 음식인 스테이크를 올렸다.”

● G20을 개최하는 한국에 조언한다면.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도쿄에 있는 한국 가정요리 식당을 가끔 이용한다. 주로 국이나 찌개를 좋아한다. 삼계탕도 좋아해서 즉석 포장 삼계탕을 사다가 집에서 끓여 먹기도 한다. 그만큼 한식이 대중화됐다고 생각한다. 다만, 매운 음식을 어떻게 외국인들이 먹을 수 있도록 조절하고 가공하느냐가 중요하다. 요리는 살아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먹는 사람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2008년 G8 정상회의에서 



j 칵테일 >> ‘될성부른 셰프’ 알아본 한국 롯데호텔

인터뷰 장소에 나타난 나카무라 가쓰히로 셰프는 아담한 체구였다. 키 1m70㎝인 기자보다 한 뼘은 작아 보였다. 작은 체구로 어떻게 그 무거운 주방기구를 다루느냐고 하자 “작은 사람이 섬세한 맛을 낸다. 덩치 큰 사람은 상대적으로 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나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이다.
 일본인 최초로 미슐랭가이드 별을 받은 요리사인 그는 일본 프랑스요리계의 선구자다. 남부 가고시마(鹿兒島)의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요리사의 길로 들어섰다. 26세가 되던 1970년 스위스를 거쳐 프랑스에서 본격적인 요리사 생활을 시작했다. 키 작고 머리 검은 동양인이 프랑스인 요리사보다 인정받기위해서는 세 배 이상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게 그의 논리였다. 그는 하루 15시간을 주방에 서서 독하게 일했다.
그가 그랑셰프로 일하던 파리의 ‘르 부르도네’가 79년 미슐랭가이드의 별 한 개짜리 식당으로 평가됐다. 일본에 미슐랭가이드의 존재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이다. 당시 그의 존재를 알아보고 스카우트 제의를 한 곳이 바로 한국의 롯데호텔이다. “어느 날 롯데호텔 사장이 찾아와 한국에서 일해 달라고 했다. 일본 언론에서도 내게 아무런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고마웠지만 그때만 해도 프랑스요리의 본고장에서 승부를 걸어보고 싶어 거절했다.” 그는 프랑스 생활 15년간 모두 11개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 파리의 ‘레스카르고 몽테르귀유’에서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을 두 번 서빙했다. 84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프렌치 셰프라 그런가. 그의 일식 취향도 남다르다.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낫토, 시오카라(소금에 절인 저장요리)를 아주 싫어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잡아온 싱싱한 생선회를 먹고 자란 그는 일식당에서 나오는 회에는 손도 안 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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