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제리』로 ‘오늘의 작가상’ 받은 김혜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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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소설가는 자신의 생애라는 집을 헐어 그 벽돌로 소설이라는 집을 짓는 사람이다.’

체코 작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가를 이렇게 정의한 적이 있다. 출판사 민음사가 선정하는 올해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김혜나(28·사진) 씨의 장편소설 『제리』는 밀란 쿤데라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과격한 성애(性愛), 자학적인 피어싱, 과도한 음주 등으로 점철된 20대 초반 변두리 인생의 고뇌와 방황이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처럼 실감나기 때문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인천의 2년제 야간대학에 다니는 여대생 ‘나’다. 나는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술을 마시고, 굳이 해야 할 이유도 없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이유 또한 없기 때문에 상대 남성을 바꿔가며 되는대로 만난다. 성애 묘사가 구체적이고 도전적이다. 나의 남자친구는 노래방에서 만난 연하의 도우미 제리다. 이런 내용 때문에 소설은 한 심사위원으로부터 “충격적이고 반도덕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21일 작가 김씨를 만나 소설 얘기, 성장 과정 등을 들었다. 만나 보니, 소설의 상당 부분은 김씨가 직접 체험한 내용인 듯했다.

김씨는 “중학교 시절부터 결석과 정학을 반복한 문제아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집과 학교가 너무 싫었단다. 그런 김씨에게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소설들은 지겨운 수학·영어 시간을 견디도록 해주는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상고로 진학했지만 적응에 실패해 남녀 공학 공고로 전학 간 끝에 고등학교를 가까스로 졸업한 김씨는 스무 살 무렵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 엇비슷한 삶을 살았다. 주변에 호스트바에 나가는 남자 친구들이 있었고, 단란주점에 다니는 여자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들의 아픔과 상처에 공감하고 때로는 함께 희망을 얘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문학이 찾아온 것은 스물한 살 무렵이다. ‘이렇게 되는대로 살다가 언젠가 죽겠지….’ 자포자기 상태의 김씨는 어느 날 소설책을 붙들게 됐다. 중학교 때 기억이 살아난 것이다. 미친 듯이 방에 틀어박혀 6개월을 소설책만 읽었고 두 달 공부한 끝에 청주대 국문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 김씨는 소설가 윤후명씨의 창작 교실을 찾아가 글쓰기를 배웠다. 얼추 5년을 소설 쓰기에 매달렸다. 김씨는 “명문대를 졸업한 중학교 동창들도 요즘 갈 곳이 없어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모양”이라며 “전망 없는 20대들에게 내 소설이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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