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장 선거운동 규제도 좋지만… 연례 문화행사까지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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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전주에 사는 이성조(40·회사원)씨는 봄바람을 쐬며 삼천천 둔치에서 즐기던 영화감상을 올해는 할 수 없게 돼 아쉽다. 매년 4월부터 10월까지 토요일 밤이면 시에서 영화를 무료로 상영해왔으나 올해는 지방선거 때문에 취소된 것이다.

李씨는 "영화상영 때 단체장 홍보를 하는 것도 아닌데 연례적인 행사마저 규제할 필요가 있느냐"고 불평했다.

지방선거를 40여일 앞두고 지방자치단체들의 각종 문화·예술행사 등이 중단됐다. 선거법에 따라 선거운동 시작 30일 전(지난달 28일)부터 자치단체가 개최하거나 후원하는 각종 행사가 규제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자치단체들은 행사를 앞당기거나 연기하고 있으며,행사 중단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크다.

◇행사 중단·연기=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은 ▶행사의 개최나 후원이 법령에 규정돼 있는 경우▶특정 시기에 개최하지 않으면 안되는 행사▶천재지변 등 재해의 구호·복구를 위한 행사 등을 제외하고는 자치단체에서 행사를 개최·후원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이는 현직 단체장이 각종 행사를 선거운동에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된 것이다.

이에 따라 대전시는 1994년부터 시민봉사실에서 계속해온 전문가 민원 상담(법률·건축·세무·한방)을 지난달 28일부터 선거일까지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충북 청주문화원은 청주시의 지원을 받아 지난 3월부터 매주 한두 차례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열고 있는 '청주문화 바로 알기 사적탐방' 행사를 이달부터 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시내 한 구청 관계자는 "정례적인 음악회도 열 수 없게 돼 주민들로부터 항의를 많이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자치단체는 행사 금지 기간을 피하기 위해 행사를 앞당겼다.부산시는 매년 5월 20일 개최해온 '부산시장배 시민바둑대회'를 올해는 지난달 13,14일 열었다.인천시 부평구도 매년 5월에 열어온 '노인 서예백일장'과 '가족노래자랑'을 올해는 지난달 27일 서둘러 마쳤다.

편법으로 행사를 치르는 경우도 있다.대전시는 충남대운동장·충무체육관 등에서 열어온 어린이날 행사를 올해는 어린이날 문을 여는 대전동물원(보문산) 개원식과 함께 개최해 시장 기념사를 행사 프로그램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동물원 개원식에 기념사를 포함시키면 선거법에 저촉되지만 어린이날 행사의 단체장 기념사는 허용되기 때문이다. 충남도는 스승의 날(15일) 행사 중 하나인 '스승과 제자의 만남'을 올해는 오는 14일 안면도 꽃박람회장에서 열기로 해 관광인파를 노린 단체장 얼굴 알리기가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선관위 입장=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선거법이 까다로워 공무원과 주민들의 불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현직 단체장들이 각종 행사를 선거운동에 이용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행사를 금지하고 허용된 행사도 규모·방법 등을 제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최준호·장대석·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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