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사들이며 브로커에 뒷돈 재건축 수주때 홍보비 수십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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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A건설사는 이달 초 서울 강북에서 아파트 용지를 사면서 땅 브로커에게 5억원을 줬다. 땅을 잡음 없이 사게 해준 대가였다. 지난달 서울 성동구의 D아파트 재건축 시공사 수주경쟁에 뛰어들었던 5개 업체는 수주 홍보비로 30억~50억원씩 썼다.

아파트 사업에서 돈이 뒤로 새고 있다. 땅 브로커에게 건네는 뒷돈이 관행화됐고, 재건축 공사 수주를 위해 쓰는 이주비나 홍보비 등도 정도를 넘어섰다.

목 좋은 땅을 사거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일감을 따내기 위해 돈을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헛돈'들이 아파트 분양가에 전가된다는 데 문제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땅 매입에서부터 공사에 이르기까지 투명한 관리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가 올리는 사업 브로커=외환위기 이후 업체들이 땅을 직접 사들여 시공하는 자체사업을 줄이자 지주와 시행사를 이어주고 수수료를 챙기는 브로커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이들은 땅값의 2~5%의 수수료를 요구해 분양가 상승의 씨앗을 제공한다.

B사는 최근 '○○컨설팅'이라는 명함을 들고 찾아온 브로커들로부터 '땅 작업'을 해주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이들은 경기도 고양시 탄현동 1만9천여평을 지주들로부터 사줄테니 28억원을 달라고 했다. 땅값(8백90억원)의 3%나 된다.

올 초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단독주택을 재건축하려던 C사에는 3명의 브로커가 찾아와 "30평짜리 땅을 30명이 사서 1평씩 지분등기해 놓았다"며 시세보다 3~4배 비싼 값을 쳐달라고 요구했다. "사업을 못할 것"이라는 으름장에 회사는 할 수 없이 비싼 값으로 땅을 사들였다.

요즘엔 사업예정지 가운데 꼭 필요한 땅을 미리 사들여 시가의 3~10배를 요구하는 속칭 '알박기'가 판치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에서는 아파트 사업부지에 속한 평당 2백만원짜리 맹지(쓸모없는 땅)를 매입한 브로커가 업체에 평당 1천만원을 요구하기도 했다. 경기도 파주에 사업예정지 1만4천평을 확보한 D사는 브로커들의 알박기로 사업이 늦어져 땅 매입비 1백50억원이 2년반이나 묶여 있었다. 회사는 이 때문에 최소 20억원의 분양가 상승요인이 생겼다고 전했다. 동일토건 최규옥 부장은 "사업이 될만한 땅에는 어김없이 알박기가 시도돼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선거판 닮아가는 과당 수주경쟁=지난달 서울 강동구 E아파트 재건축 수주에는 4개 대형업체들이 참여해 선거전을 방불케 했다. 업체들마다 투입한 직원 외에도 일당 5만~10만원을 주고 주민들을 홍보요원으로 활용했다.게다가 회사마다 10만~20만원씩의 선물을 조합원들에게 안겼다. 일부 업체는 조합원들을 호텔에 초청해 승용차 등의 경품을 주기도 했다. 수주전에 참여한 한 건설업체 임원은 "업체들이 쓴 돈이 적게는 10억원, 많게는 6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시공사를 정한 서초구 반포주공 3단지 수주전 때도 한 업체가 최고 80억원까지 썼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H건설 관계자는 "이렇게까지 해서 수주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건설사들이 조합원 표를 끌어 모으기 위해 뿌린 2백여억원은 결국 소비자 부담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주비도 문제다. 재건축 조합원에게 주는 무이자 이주비는 2~3년 전에는 6천만~1억원이었으나 요즘엔 최고 3억원으로 치솟았다.1천가구 단지의 경우 1천억~2천억원이 무이자 이주비로 나간다. 말이 무이자이지 실제로는 금융비용 모두가 조합원 부담금과 일반 분양가에 포함된다. 서울 강남 한 재건축단지의 경우 전체 공사비 8천3백억원의 12.6%인 1천45억원이 이주비로 나갔다.

성종수·서미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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