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수액으로 황금색 왕관 재현 : 금속공예가 문구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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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제주도와 전남 서남해안에서 자생하는 황칠(黃漆)나무의 수액(樹液)을 이용한 공예로 우리 문화상품의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전남 나주시 신촌리 고분에서 출토된 국보 295호 '백제 금동관'을 본따 황금색 왕관을 재현한 중견 금속공예가 문구(44·광주시 서구 쌍촌동)씨. 그는 황칠나무의 수액을 도료(塗料)로 써서 만든 금동관을 20일 공개했다.

"황칠은 햇볕에 강한 천연 도료입니다. 황칠 제품은 다양한 금색을 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인체에 유해한 전자파도 상당량 흡수하죠."

文씨는 월드컵 축구대회 관광객들을 겨냥해 황칠을 한 비녀·가락지·다기세트·액세서리 등 제품 20여가지를 만들었다. 이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20일 전남도가 개최한 '황칠 벤처와의 만남'세미나에서 '황칠의 자원 증식과 활용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했으며, 작품을 전시했다.

홍익대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한 文씨는 1990년 대학원을 졸업한 뒤 도장법에 관심을 쏟으면서 어렸을 때 고향 완도에서 본 황칠을 떠올렸다. 이후 전국의 박물관 등을 돌며 자료를 찾아 황칠에 대해 연구했다.

文씨는 "백제 때 황칠이 성행했고, 나주 일대에 황칠 장인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해 지난해 초부터 작업을 벌였다"고 말했다.

그는 동판으로 실물과 같은 크기(높이 25㎝)의 왕관 형태와 문양을 만든 다음 황칠로 황금색을 드러냈다. 실제 금동관은 동판에 금박을 했으나 그가 만든 작품은 동판에 황칠을 입힌 것이다.

그는 99년부터 광주에 '디자인 실크로드'라는 사무실을 내고 황칠을 이용한 전통 문화상품의 개발에 나섰다. 올들어서는 호남대 박혜원(산업디자인학)교수와 함께 황칠나무의 잎과 줄기를 이용해 금빛을 내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文씨는 "황칠나무는 희귀종이며, 20년 이상된 나무에서만 수액을 채취할 수 있다"며 "이런 황칠 생산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다"고 말했다.

광주=천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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