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농 CEO ①] 20·30대 젊은 농군들 농업 미래 책임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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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재호씨가 비닐하우스에서 수확을 앞둔 토마토를 손질하고 있다.

농업이 어렵다는 말,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쌀시장 개방 확대, 농촌사회 노령화, 비싼 인건비…. 하나같이 우울한 얘기 뿐이다. 그러나 여기 농업의 미래를 보여줄 젊은 농부들이 있다. 20, 30대의 이들은 농부라기보다는 '농업 최고경영자(CEO)'다. 과학적 채소 재배, 트랜드를 예측한 원예시장, 유통망을 확보한 쌀 등. 이들을 찾아가 농업의 희망을 들어본다. <편집자>

"농사도 정보가 빨라야 성공합니다. 어떤 작물을 심을지,어떤 병이 돌지 이런 정보를 재빨리 얻을 수 있어야 그만큼 성공할 확률이 높지 않겠습니까."

호남고속도로 장성 IC에서 20여분 거리인 전남 장성군 남면 자풍마을의 비닐하우스(3000평)에서 토마토.피망을 재배하는 백재호(29)씨는 일본에 수출할 피망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백씨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온뒤 자동차를 좋아해 광주 시내에서 자동차 정비공으로 5년을 일했다.그러다가 평소 농촌의 포근한 인심과 수확을 기쁨을 그리워해 10년만에 농촌으로 돌아왔다. 그는 올해 아버지와 함께 피망,토마토를 재배해 1억원의 순수입을 기대하고 있다.농촌에서 성공의 꿈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농촌은 아직도 인심좋고 맑은 공기아래 땀을 흘린만큼 보람을 얻는 삶이 가능합니다.여기에 서너달에 한번씩은 수확을 하는 기쁨까지 있지 않습니까."

피망은 심은 지 두달만에 완전히 자란다.그리고 일주일에 한번씩 수확한다.토마토 역시 두달만에 성숙해 3일에 한번씩 수확한다. 백씨가 귀농을 결심하고 농사를 본격적으로 배운 것은 2000년 한국농업전문학교(3년제)에 입학하면서 부터다. 영농 후계자를 집중 육성하는 이 학교에서 현장 실습 위주의 교육 덕분에 과학 영농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다.전문학교의 교육 프로그램으로 2002년에는 6개월간 미국 하와이의 토마토 농장에서 장기간 현장실습을 하면서 안목도 넓혔다.

2003년 초 학교 졸업후 이 학교 졸업생의 특전인 영농자금(1억원) 대출을 받아 우선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옆에 1000평 규모의 토마토 재배용 비닐하우스를 지었다. 첫해 방울 토마토를 재배해 60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이것 저것 제외하고 3000만원 정도 남았다. 올해는 방울 토마토 생산량이 넘쳐 완숙 토마토로 바꿨다.

그의 일과는 해뜨면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해지면 일을 그만둔다.비닐하우스에 조명시설까지 하기엔 투자비가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엔 오후 5시 반이면 일을 마친다.그대신 저녁 시간에는 틈틈히 인터넷으로 영농 과학화에 대한 정보를 주고 받는다.

각지에 퍼진 영농학교 출신들과 정보를 교환하면서 재배 작물에 대한 질병과 해충에 대한 지식을 쌓는다.인터넷 덕분에 타지역에서 질병이 도는 것을 대비할 수 있다.그만큼 농사에서도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인터넷 전자상거래도 도입했는데 아직까지는 홍보가 덜돼 판매가 부진하다.그만큼 공부할 숙제가 남은 것이다.

작물을 심을 때도 인터넷은 큰 도움이 된다.지난해 물량과 가격을 검색해 재배후 가격을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비닐하우스는 상당 부분 컴퓨터화 됐습니다.컴퓨터에 연결된 컨트롤박스가 적정 수분을 체크해 물을 주고 일조량과 환기까지 알아서 조절을 합니다.비료도 물에 타서 공급하죠.그만큼 손이 덜가는 셈이죠."

비닐하우스가 컴퓨터화 됐다고 해도 손이 한가한 것은 아니다.수시로 비닐하우스를 돌아다니면서 토마토가 병에 걸렸는지,어떤 벌레가 도는지 검사를 자주 해야한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하는데 평당 15만원이 듭니다. 따라서 한 평당 연간 10만원 정도 매출을 올려야 하는데 아직까지 6~7만원선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의 성공 비결은 꼼꼼한 자료 수집과 정리다. 농업 전시회에 다녀오면 각종 농기자재 관련 유인물을 빠짐없이 챙겨와 정리해둔다. 하와이 실습에선 1권이면 족한 실습일지를 두권이나 만들 정도로 빼곡히 메모했다. 일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실습일지를 뒤져본다.

그의 농사에 대한 신념은 '농사는 정직하다'다.흘린 땀만큼 보람을 가져준다는 믿음이다.그는 농사를 마치면 술로 보내는 농촌의 문화 개선에도 관심이 많다.부근 젊은이들과 함께 4H클럽 활동을 하면서 유대관계를 갖고 있다.부근 관광지인 백양사 단풍 축제때는 미아방지를 위해 명찰 달아주기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저녁 시간에는 인라인 스케이트도 타며 신세대 젊은이로서 끼도 발휘한다.

백씨에게 가장 큰 버팀목은 비닐하우스 경력 10년의 아버지다. 아버지와 함께 컬러 피망 재배에 나서 일본으로 전량 수출하고 있다.단가가 높은 것은 아니지만 안정적인 가격에다 적정 이익을 보장해 줘 열심히 재배를 하면 된다.

"농사의 가장 큰 어려움은 마케팅(판로)입니다.판로 해결에 적극 나서야할 단위 농협이 은행업무만 치중하고 있어 도심 소비자와의 판매망 개척 등에는 신경을 덜 쓰는 편입니다.결국 농민이 판매까지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데 이래가지고는 선진 농업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두번째는 농촌 어느 곳에서나 보편화한 인력난입니다.그야말로 젊은 일군을 구하기 어렵죠.농업 정책 당국도 어느 정도 수요.공급 조절이 가능하도록 지역별로 재배 작물을 특화해보는 것도 검토해볼만 합니다."

요즘 귀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귀띔한다. 대부분 농사 경험이 없는 도회지 사람들이다. 그는 "농사라는게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합니다.무작정 농사에 뛰어든 경우 대부분 실패하고 말지요.농촌에 대한 환상보다는 현실을 바로 보고 철저히 공부한 뒤 시작해야 합니다."며 조언을 잊지 않는다.

그는 오는 19일 총각 딱지를 뗀다.나주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는 신부를 맞는다.

"올해 꼭 결혼하려고 데이트를 열심히 했지요.상대적으로 농사를 소홀히 한 점도 있습니다.내년부터 신부될 사람의 내조를 받으면 농사가 한결 신이 날 것 같네요."

그의 환한 웃음 속에 우리 농촌의 희망이 담겨 있다.

장성=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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