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권자가 나선다 : "지식·정보에의 접근 납세자의 당연한 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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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한국은 정보지식사회를 지향한다면서 정작 정보-지식의 기본 인프라인 공공도서관·학교도서관·대학도서관은 양적·질적으로 빈곤국 수준에 묶어두고 있는 나라다. 인구 대비로 볼 때 우리의 공공도서관 수는 독일의 30분의 1, 일본의 6분의 1이다. 전체 중·고등학교의 80% 이상에서 학교도서관은 폐쇄돼 있거나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대학도서관은 그 빈궁성으로 따져 세계 일류다.

도서관이 무슨 그리 큰 문제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다수 정치인, 고위 정책관료, 그리고 우습게도 다수의 대학총장과 학교장들이 거기 포함된다.

공공도서관은 돈 없는 시민에게도 정보·지식에의 평등접근권을 보장하는 공공의 시설이다. 그런데 책은 반드시 사서 봐야 하고 돈 없으면 책 외의 지식 콘텐츠에 접할 길이 막막한 것이 우리 사회다. 도서관이 뭐 그리 대단한 문제냐고 묻는 이들의 눈에는 이 사회적 불평등이 보이지 않고 그 불평등이 일으킬 수 있는 경제적 손실과 사회적 격차가 감지되지 않는다.

민주사회 발전에도 도서관은 필수적이다. 공공도서관은 주민의 서재이고 정보 센터이며 민주시민교육의 장이다. 그 시설이 충분히 있어야 시민은 유용한 분석 정보에 접근하고 정치적 판단과 사회적 성찰의 능력을 키운다. 공공도서관은 또 시민의 자기 계발과 평생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지향과 목표는 너무 다양해서 학교 교육 이후의 자기 계발을 가장 잘 담당할 수 있는 것은 시민 그 자신이다. 국가가 해줄 것은 그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공공도서관을 통해 공급해주는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역대 정권들은 이처럼 정치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 필수 인프라인 공공도서관에 대한 이렇다 할 정책도, 예산확보도 없는 상태를 50년 넘게 지속해왔다.

지난해 8개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을 펴게 된 것은 바로 이 정책 부재에 시민사회가 개입해서 중앙정부와 지자체들에 도서관 정책을 세우고 예산을 확보하도록 요구하기 위해서다. 책 읽을 권리는 납세자 시민의 권리이다. '국민운동'은 그래서 단순 독서운동 차원을 넘는 정책 캠페인이고, 시민의 사회운동이다. 물론 이것만이 '국민운동'의 목표 전부인 것은 아니다. 시민도 책을 읽어야 한다. 우리의 소박한, 그러나 궁극적인 지향점은 지식·판단·성찰의 시민적 능력이 균형 있게 발휘되는 기본이 선 사회, 혹은 그런 사회의 은유로서의 '책 읽는 사회'이다.

<도정일 : '책 읽는 사회 만들기 국민운동'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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