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스포츠로 자리잡으려면 (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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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일본 전국시대에 9단은 곧 명인이었고 명인은 그 시대에 단 한 명만 존재할 수 있었다. 한때 나이가 들어 실력이 쇠락해도 9단의 명예와 권위는 죽을 때까지 지켜졌다.
1941년 최강의 가문인 본인방(本因坊)이란 이름이 타이틀전의 명칭으로 바뀌면서 현대기전이 시작됐고 프로기사의 집합체라 할 일본기원이 프로 선발, 대회 운 영 등 바둑의 모든 것을 관장했다. 한국기원은 일본기원을 따라갔다.
스포츠의 역사에선 아마추어가 먼저고 프로가 나중이지만 바둑은 프로가 먼저고 아마추어가 나중이란 독특한 패턴을 지닌다.
일단 프로가 되면 권위를 얻고 한 울타리 안에서 같이 산다는 인식 때문에 가문이나 도장의 속성이 면면히 흐르는 분위기를 띤다.
오늘날의 프로 스포츠는 스타와 팬을 상업적으로 연결해 막대한 돈을 만들어낸다.
프로들의 경쟁은 매우 치열하고 대우도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평등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바둑계는 '다 같은 프로'란 인식이 완강하다. 연간 상금이 10억원을 넘어선 이창호9단과 수백만원에 그치는 무명기사 사이의 명백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연대감은 깊은 전통만큼이나 유별나다.
바둑이 앞으로 스포츠로 성공하려면 이같은 전통을 살리면서 경쟁을 강화하는 타개책이 필요하다.
▶한번 프로가 되면 죽을 때까지 대회참가 자격을 주는 현행 제도는 일종의 종신고용제와 비슷해 프로답지 않다.
이런 '종신고용'은 매년 참가자의 수를 늘려 스폰서를 피곤하게 하고 경쟁심을 떨어뜨려 팬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무엇보다 프로가 되려는 지망생들을 너무 힘들게 해 바둑 지망생을 크게 축소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온다. 프로 수가 5백명을 넘어 공멸의 길로 들어선 일본이 좋은 예다.
▶현재 국내기전은 프로기사 1백80명이 대회에 참가하고 있는데 이중 1백20명만 참가하게 하고 50명은 프로든 아마든 예선통과자로 채운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
미국의 프로골프처럼 경쟁을 강화한 한 예인데 대회는 재미있어지고 바늘구멍 같은 프로의 문이 넓어지면서 바둑 지망생은 늘어나고 현역 선수로서 한계에 달한 프로들에겐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다.
▶보완책으로 '시니어 기전'을 많이 만들 필요가 있다. 화려했던 9단들조차 젊은 기사들에겐 안되는 게 프로의 세계다. 일정 연령에 달한 프로들만의 장을 따로 만든다면 프로세계의 연대감은 물론 팬들과의 연대감도 오래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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