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왜 大寒과 立春 사이 이사 몰릴까? "해코지할 귀신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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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제주도에선 지난달 말 이사 대란(大亂)으로 섬 전체가 몸살을 앓았다.
제주도 사람들은 집을 옮길 때 대부분 대한(大寒·1월 20일) 닷새 후부터 입춘(立春·2월 4일) 사흘 전까지 한다. 한 해에 이사하는 사람의 90%가 1주일에 불과한 이 시기에 몰리는 바람에 이사비용이 폭등한다. 올해에도 예외 없이 1월 25일부터 2월 1일 사이에 이사 대란이 벌어졌다.
이같은 기현상은 순전히 '신구간(新舊間)'이라는 제주도의 특이한 세시풍속 탓이다. 신구간이란 말 그대로 '새로운 것과 묵은 것의 사이'란 뜻.
우리의 전통적 시간관념으로 보자면 한 해의 시작은 입춘이다. 입춘 바로 앞에 있는 대한은 한 해의 끝이 된다. 그러니 대한과 입춘의 사이는 묵은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시작하는 전환점, 곧 신구간인 셈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신구간 중 '온갖 토속신들이 하늘의 옥황상제에게 연말결산을 겸한 보고와 신년 업무를 하명받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어왔다. 따라서 신구간에는 해코지할 토속신이 없기에 이사하기 좋은 날(손 없는 날)이 된다. 이사뿐 아니라 집안을 고치는 등 굵직한 집안일을 모두 이 때 해치워야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전통 세시풍속은 우리의 삶 속에 살아 있다. 하지만 전통은 급속히 사라져가거나 서양풍으로 변형되고 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www.nricp.go.kr)가 우리의 세시풍속을 서둘러 수집·정리한 것도 이같은 기층문화의 사라짐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문화재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세시풍속』 네권은 각각 경기도·강원도·충청북도·제주도의 세시풍속을 현장조사해 내놓은 자료집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들이 4개 광역지역의 65개 시·군,1백95개 마을을 직접 찾아 70, 80대 노인들을 상대로 수집했다. 나머지 지역들에 대한 조사결과도 내년 말까지 책으로 묶여 나온다. 연구소는 지역별 조사결과를 정리, 별도의 민속지도와 사전도 편찬할 계획이다.
조사 결과 같은 한반도 남쪽 지역이지만 지역별로, 특히 자연환경에 따라 나름대로의 특성을 적지 않게 보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가장 특이하고, 또 가장 많은 세시풍속을 지금도 가장 충실하게 지켜가는 곳은 역시 제주도. 육지와 단절돼 풍속이 특이하고, 바다에 의지해 살아 각종 재난이 많은 탓에 민간신앙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7월 백중이면 제주도 사람들은 '테우리코사'라는 독특한 제(祭)를 올린다. 제주 사투리 '테우리'는 목동, '코사'는 제사를 말한다.
목축의 전통이 오래된 제주도이기에 백중이 되면 목장이나 들판에 나가 가축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보통 제사와 달리 축문을 읊지 않으며 제관들이 절을 하지도 않는다. 대신 테우리들이 절을 한다.
반면 내륙지방인 경기도 동두천 지역의 경우 정월 보름이면 '두더지 만두'를 만들어 먹는다. 밭농사를 망치는 두더지를 잡아먹는다는 상징적 행위로 두더지의 주둥이와 꼬리 모양으로 만두를 빚어 먹는 것이다.
전국 어디든 정월 보름은 한 해의 안녕을 기원하는 각종 굿거리와 제례를 올리는 중요한 날이다. 충북 단양과 같은 산간지역에선 산신제와 기우제를 올리는 반면 제주도에선 안전운항을 기원하는 뱃고사(船告祀)와 풍어제를 많이 지낸다. 지역은 달라도 세시풍속을 지켜온 뜻은 하나, 복(福)을 바라는 마음이다.
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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