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부] 강정길·남기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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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이웃에 여러분의 사랑과 정성을 나눠주십시오."

지난 3일 오전 서울 신문로 새문안교회 앞. 빨간색 자선냄비를 앞에 두고 구세군 남녀 사관이 종을 흔들며 낭랑한 음성으로 행인들의 귀를 사로잡고 있었다. 쌀쌀한 날씨 때문에 옷깃을 세우고 종종걸음치던 중년의 신사가 그 소리에 멈춰 구김살이 잡힌 지폐를 냄비에 집어넣자 두 사람은 동시에 고개를 숙이며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이들은 구세군 대한본영에 소속된 강정길(42.(左)).남기숙(41) 사관 부부다. 구세군 사관학교(기독교의 신학교에 해당) 선후배 사이(아내 남씨가 4년 선배)인 두 사람은 선배 사관의 소개로 만나 1996년 결혼했다.

"처음 만나 두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눠보고 '이 사람이라면 평생 같은 길을 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청혼을 했죠." (강 사관)

"저 역시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듯한 남편의 강한 의지에 반해 속으론 당장 허락했어요. '일주일만 생각해보겠다'는 건 괜히 해본 말이었고요."(남 사관)

첫눈에 마음이 통했다는 두 사람은 구세군 내 260여쌍에 달하는 사관 부부(구세군의 경우 기혼자는 부부가 함께 사역을 하는 게 원칙이다) 중에서도 '닭살 부부'로 소문이 나 있다. 지난해 7월부터 구세군 관련 서적을 번역.출판하는 문학부에서 함께 일하다 보니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굴을 맞대고 지내지만 "그래도 돌아서면 여전히 남편이 보고 싶다"(남 사관)고 할 정도다.

요즘처럼 추운 날 거리로 자선냄비 봉사를 나갈 때면 "1년 중 가장 보람있는 시간임을 알면서도 얼마나 힘들까 마음이 쓰인다"는 게 두 사람의 솔직한 심정. 그래서 추위가 극심한 날엔 강 사관이 종종 아내의 봉사 시간을 대신 채워주기도 한다.

"자선냄비 봉사를 한 지 벌써 10년쯤 됐네요. 그간 외환위기도 겪었지만 모금액 목표를 못 채운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남 사관은 "최악의 불경기라는 올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어려운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를 위해 기부하는 모습에 늘 감동을 받습니다. 장사하는 아주머니가 머리에 인 짐을 애써 내려놓고 돈을 넣고가기도 하고, 심지어 노숙자가 남에게 받은 돈을 내놓는 경우도 있어요."(강 사관)

올해의 모금 마감일인 24일엔 서울 용산 미8군 부대 안에서 함께 자선냄비 봉사에 나선다는 두 사람은 "이웃을 도우라는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며 사는 삶이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했다.

글=신예리 기자, 사진=신동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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