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총리가 해야 할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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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4년 동안 교육부장관이 일곱번째 교체됐다. 신임 교육부총리는 교육전문가로서의 식견과 행정경험이 풍부해 기대가 크다. 그러나 대통령 임기를 불과 1년 정도 남겨놓은 현 시점에서 신임 장관이 이른바 교육 이민 사태와 심각한 사교육비 증가, 국민의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그리고 교원의 사기 저하 등 당면 현안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교육현장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일 것이다.
첫째, 교단으로부터 멀어져 있는 교육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일이다.교실붕괴론은 궁극적으로 교원의 사기저하에 1차적 원인이 있다. 아무리 열악한 여건이라도 교원들의 의욕이 충만해 있으면 교실붕괴는 막을 수 있다. 반대로 훌륭한 시설을 갖춰도 교원의 열정과 사명감이 없으면 훌륭한 교육은 불가능하다. 교원의 사기진작에 거창한 무엇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교원으로 하여금 교육개혁의 동반자요, 주체임을 확신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정책결정과정에 교원이 깊숙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 또 정부와 교원간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우수한 인재의 교직유치를 위한 우수교원확보법, 가르치는 일에 보람과 긍지를 갖게 하는 수석교사제는 정부가 수차례 공언하고도 실행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스스로 신뢰를 지켜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특히 교육부와 교원단체가 교섭을 통해 합의한 사항은 반드시 이행돼야 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법적 보완이 필요하다. 신뢰회복은 바로 여기서 시작될 수 있다.
둘째, 경쟁만 유발하면 교육의 질이 높아질 것이라는 시장·경제논리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은 수요에 의해 공급이 좌우되는 시장 메커니즘과 다르며 사랑과 신뢰의 인간적 관계를 기초로 하고 있다. 예컨대 교원을 한 줄 세우기하는 성과급은 수업에 열심인 교사가 오히려 우대받지 못하는 등의 부작용을 양산했다. 교원의 질 향상을 위해서는 성과급이 아니라 교원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할 수 있는 혁신적인 자질향상 프로그램이 우선돼야 한다.1명 퇴출시키면 2.5명 채용할 수 있다는 목전의 이익보다 경륜 있는 교사의 일시 대량 퇴직으로 발생할 수 있는 교육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것이 바로 교육논리인 것이다.
셋째, 교육행정을 관료중심에서 교육전문가 중심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각종 교육정책들이 현장과 괴리되는 이유는 현장교육경험이 있는 전문직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부 내에 교육경험을 갖고 행정을 맡고 있는 교육전문직의 숫자는 매년 축소돼 왔고, 특히 초·중등 교원정책 관련 주요 직위에 교육전문직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현장교육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교육행정에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관련법률을 개정하고 과감한 인사를 단행해야 한다. 또한 테크놀로지 시대에 걸맞게 과학기술을 전담하는 부서의 설치는 물론 나아가 유아교육·학교보건 등 현장교육과 직결된 부서의 전문직 보임 확대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지방교육행정도 마찬가지다. 교육감을 보좌해 시·도 교육행정을 관장하는 부교육감은 현재 전국의 16개 시·도교육청 중 14개 지역을 중앙에서 임명된 일반직 공무원이 차지하고 있다. 부교육감도 지방행정자치단체의 부지사와 마찬가지로 행정담당 부교육감과 장학담당 부교육감제를 도입해 복수 부교육감제를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래야만 학교 위에서 군림하는 행정이 아니라 학교단위의 교수-학습활동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교육행정을 구현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단기간의 성과에 연연하지 말고 일관된 교육정책을 펼쳐나가야 한다. 비록 대중적 인기에 부합되지 않더라도 교육의 전문성에 역행하는 잘못된 정책은 과감하게 바로잡아야 한다.그러나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책이 안정성과 일관성을 가질 수 있도록 헌법에 기초한 국가차원의 초정권적 교육정책심의기구의 설치다. 이를 위한 기초작업을 시작한다면 역사에 길이 남는 교육부총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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