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노트] 교회일치 기도주간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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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눈이 내리던 지난 21일 오후 1시 서강대 운동장. 천주교.개신교.성공회.루터회 등 기독교 성직자 60여명이 운동복 차림으로 모였다. 몸과 몸이 격렬히 부딪는 축구를 통해 교회일치의 정신을 드높이자는 취지였다.

천주교 주교회의의 '교회일치와 종교간 대화위원회'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한국정교회, 기독교한국루터회 등이 교회일치 기도 주간(18~25일)을 맞아 처음 마련한 축구대회였다.

"파이팅!"

성직자 축구선수들은 서로 손을 포개고 힘껏 함성을 외쳤다. 미끄러지고 뒹굴며 전후반 15분씩 뛴 결과 천주교가 한국루터회를 5:1로, 성공회가 대한예수교장로회를 6:3으로 이겼다.

그러나 이들에겐 승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무심결에 욕도 내뱉을 수 있는,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돌아가 서로의 가슴을 확인하는 소중한 기회였다. "신부님들만 이겨 목사님들이 울상입니다"라거나 "루터회가 축구를 잘 하는데 졌으니 하느(나)님 뜻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농담이 오갔다.

경기를 끝낸 성직자들은 함께 어울려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씻으며 형제애를 확인한 뒤 서강대 이냐시오관내 소강당으로 옮겨 기도시간을 가졌다. 지금까지 상대방에 대한 무관심으로 교회일치를 이루지 못한 데 대한 참회의 기도였다.

우리나라 교회일치운동은 1960년대 중반에 시작됐으나 반목과 갈등의 골이 너무 깊어 그간 실질적인 진척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다 성직자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완전한 일치는 아니더라도 불필요한 마찰과 갈등은 피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천주교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의 총무인 홍창진 신부는 "이젠 지역교회 안에서 각 교파들이 북한돕기.빈민돕기 등에서 자발적으로 일치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이 조반니 바티스타 모란디니 교황대사의 축사 한 줄을 가슴 깊이 새기는 것만으로도 이 행사는 충분히 의미를 지닐 듯하다.

"'성부여, 이 사람들이 하나되게 하소서'라는 기도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외침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평화와 화해의 증거자로 살아갑시다."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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