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돋을볕 마을, 악양에는 보리와 밀이 익어가고 있습니다. 초여름의 가을 풍경, 맥추(麥秋)입니다. 바람결에 일렁이는 보리밭의 춤사위에 빠져, 내리쬐는 햇살의 따사로움에 온몸을 맡기며 휘적휘적 걸었습니다. 둑길을 한 고비 돌아들어 갈개(논에 물을 대기 위해 가장자리에 얕게 판 도랑) 매는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퍽, 퍽, 퍽, 휴~우.”
PHOTO ESSAY 이창수의 지리산에 사는 즐거움
서너 번 괭이질에 큰 숨을 쉬며 허리를 펴고, 잠시 둑에 앉았다 다시 일어나 괭이질을 반복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짠해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논을 두드리는 괭이질과 큰 숨소리가 퍽퍽 가슴을 칩니다.
나락을 키우는 농사는 온몸의 노고로 시작합니다. 한동안 저는 농사꾼이라고 떠들어댔습니다. 요즘은 절대 농사꾼이라 떠들지 않습니다. 농사꾼이라 함은 이렇게 온몸으로 온 힘을 다해 땅을 딛고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지어야 하는 농사의 참됨을 근래 들어 깨달았습니다.
이창수씨는 16년간 ‘샘이깊은물’ ‘월간중앙’등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다. 2000년부터 경남 하동군 악양골에서 녹차와 매실과 감 농사를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