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교 '심화교육' 제대로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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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교육인적자원부가 현재의 중학교 3년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2005학년도부터 수험생 선택의 폭을 대폭 늘리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수능시험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개편안에 따르면 현재의 언어.수리.외국어(영어).사회탐구.과학탐구 등 다섯개 평가영역 외에 직업탐구 영역을 신설,사회.과학.직업탐구 영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하고 제2외국어 영역에 한문을 추가한다는 것이다.

또 현행 제도가 제2외국어를 제외하고 모두 응시토록 하고 있는 데 반해 모든 영역을 임의 선택토록 하고 있다.

시험 과목 축소는 수험생들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하다. 현재 직접 출제 범위에 포함되는 교과목 수가 공통사회와 공통과학의 세부 교과목을 포함할 경우 10~16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고교에서 심화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느냐다. 근래 입시에서도 드러났듯이 이공계 기피 현상이 날로 심화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올 수능시험의 자연계 응시생 비율만 봐도 5년 전(43%)보다 크게 줄어든 27%에 불과했다. 이런 마당에 선택 과목을 대폭 늘린다면 학생들이 점수 따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과목에 몰릴 것은 불보듯 뻔하다.

입시와 교과 개편을 잘못 연계할 경우 교과 과정만 왜곡시킬 뿐이다. 고교 교육의 목표가 대학 수학이나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 소양을 기르는 것이라고 할 때 심화 교육은 이와 반대로 특정 교과목에 대한 편중 현상을 부채질할 수도 있다.

고교간 편차를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수 목적고와 내년부터 선보일 자립형 사립고의 경우 일반 고교에 비해 우수 교사와 실험실습실 등을 잘 확보하고 있다. 특히 지방 고교들은 이들 학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열악하다.

학교 편차는 결국 과외를 부추겨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학 진로를 사실상 고교 2학년 때 결정해야 하는 만큼 고1생은 물론 중3생까지 상급 학년 과정을 미리 공부하기 위해 앞다퉈 사설 학원 등을 찾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개편안은 또 선택과목을 대폭 늘림으로써 난이도 조정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지난해의 '물수능'과 올해의 '불수능'으로 얼마나 큰 혼란을 겪었던가. 교육부측은 표준점수제로 이를 보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수능점수 몇점이 당락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교육부는 대학 입시에서 수능점수 비중이 낮아지길 기대하고 있지만 대학들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내신이 부풀려지는 현실에서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평가 기준이 수능 성적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지금부터라도 심화 선택과목 중심의 교육과정과 수능시험 제도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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