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비전이 역사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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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파란 호기심이 가진 재산의 전부였던 시절 우리에게 늙은 대륙은 정복을 기다리는 완숙한 여인이었다. 틈만 나면 지도 한 장과 자동차 열쇠를 챙겨들고 허기를 달래듯 구대륙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나갔다.

피레네에서 알프스, 북해에서 지중해까지 우리는 미친듯 달렸고, 하나 둘 나라와 도시를 정복해 나가는 재미에 아찔한 현기증마저 느꼈다. 일주일의 휴가기간 중 프랑스에서 이탈리아.슬로베니아.오스트리아를 거쳐 스위스.벨기에를 돌아오는 6개국, 5천㎞ 주파 기록을 세운 일도 있다. 12년 전 일이다.

*** 단일통화 19세기만에 부활

그 때 나에게 여행은 무엇이었던가. 조각난 기억과 단편적 인상만 머리에 쓸어담은 채 포뮬러1 자동차 경주대회에 나간 파일럿인 양 고속도로를 쫓기듯 질주한 것이 철없던 시절 나의 여행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파리로 돌아올 무렵 우리에게 남는 것은 한 움큼의 동전뿐이었다. 동전은 서로 바꿔주지 않는 것이 환전상들끼리 통하는 규칙이다. 정복여행이 끝날 무렵이면 각양각색의 유럽 동전이 지갑과 주머니를 묵직이 채우곤 했다. 수버니어처럼 여행은 우리에게 동전으로 남았다.

열흘 후면 이런 추억도 역사의 저 편 구석에 묻히게 된다. 유럽 단일통화인 유로가 오는 12월 31일 자정을 기해 노르웨이에서 그리스.아일랜드.포르투갈까지 유럽 12개국에서 실제 통용되기 시작하면 더이상 동전은 여행의 부산물일 까닭이 없다.

유로랜드 내에서는 어디를 가나 상품과 서비스 가격은 유로로 표시되고, 유로로 거래된다.현금지급기는 유로만 토해낸다. 앙리 생 시몽과 빅토르 위고가 꿈꿔왔고, 장 모네와 콘라드 아데나워가 구상했고, 헬무트 콜과 프랑수아 미테랑이 추진한 유럽 단일통화가 마침내 손에 잡히는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본지의 베를린 특파원은 '라인강 기적'의 상징인 마르크를 버리고 유로를 받아들이는 독일인의 심경을 곱게 키운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의 심정에 비유했다(12월 18일자 8면). 유로는 역사적 숙적 관계인 독일과 프랑스의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미테랑은 독일 통일을 용인하는 조건으로 마르크화 포기를 요구했고, 콜은 이를 받아들였다.유럽연합(EU)이 아직 미합중국이 아닌 이상 유로의 장래에는 불안한 구석이 없지 않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금리정책만 관장할 뿐 거시경제정책은 여전히 각국 정부의 몫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금리정책과 거시경제정책의 괴리가 혼란과 파탄의 요인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3년 전 유로당 1.2달러의 강세로 출발한 유로가 달러 가치의 90% 선에 머물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로는 현재진행형 실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는 꿈을 현실로 바꿔놓은 위대한 비전의 산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비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귀족이었던 리샤르 쿠덴호브 백작의 유럽평화와 코스모폴리타니즘에 대한 신념에 많은 몫을 돌려야 한다.

*** 유로는 현재진형형 실험

그는 1894년 도쿄(東京)주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공사였던 하인리히 쿠덴호브와 도쿄의 골동품 상점 딸인 아오야마 미쓰코(靑山光子) 사이에서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유럽으로 건너가 결혼 10년 만에 청상이 된 모친의 코스모폴리탄적 교육열은 장차 쿠덴호브를 범유럽 운동의 주창자로 우뚝 서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진행돼온 유럽 통합 과정은 쿠덴호브가 품었던 원대한 비전의 실현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쿠덴호브의 비전은 로베르 슈망과 장 모네로 이어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의 탄생으로 결실을 보았고,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출범시킨 로마조약의 체결로 이어졌다. 학자들은 동서양의 피가 절반씩 섞인 쿠덴호브를 EU의 사상적 원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위대한 비전이 역사를 만든다.

배명복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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