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북한, 헛된 꿈에 사로잡혀 협박·테러 자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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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은 24일 천안함 사건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뒤 김태영 국방부 장관 등과 함께 해군 전사자 명비로 이동해 참배했다. 이 대통령이 명비를 가리키며 이야기하고 있다. [조문규·김태성 기자]

이명박 대통령의 24일 대국민 담화는 낯선 장면으로 시작됐다. 오전 10시 정각. 이 대통령은 서울 용산기념관 호국추모실 복도를 홀로 걸어 나왔다. 복도 양 옆으로 6·25 전쟁영웅 21명의 흉상이 스쳐갔다. 단상 왼편에는 대형 태극기가 걸렸다.

10분 동안 차분한 어조로 담화문을 읽어 내려가던 이 대통령은 “북한 당국에 엄중히 촉구한다”는 대목에서 두 손을 깍지 낀 채 단상 위에 올렸다. 단호함을 표현하려는 듯했다. 북한을 향해 “여전히 대남 적화통일의 헛된 꿈에 사로잡혀 협박과 테러를 자행하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라는 대목에선 목소리 톤이 높아지고 얼굴이 상기됐다. 북한 주민이 굶어 죽는 와중에도 핵 개발에 매달리는 북한 당국자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노여움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2002년 제2 연평해전 전사자 6명과 한주호 준위, 천안함 46용사의 이름이 새겨진 명비. [조문규·김태성 기자]

이 대통령은 향후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임을 강조하면서는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만행에 대해 참고, 또 참아왔다”고 했다. 또 “이제는 달라질 것이다. 북한은 자신의 행위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도 높게 경고했다.

이번 담화문은 이 대통령의 지휘 아래 청와대 김성환 외교안보·박형준 정무·이동관 홍보수석, 김두우 메시지기획관이 수차례 회의를 거쳐 완성했다고 한다. 안보 관계 장관들에게도 지난 주말이 돼서야 원고가 전달됐다. 참모들이 초고를 완성하자 이 대통령은 퇴근길에 “한 부 보내달라”고 직접 연락해 관저에서 밤늦게까지 원고를 직접 검토했다고 한다. 그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는 뜻이다. 이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직접 써 넣은 표현도 적지 않았다. 이동관 홍보수석에 따르면 담화문 맨 앞의 “한반도 정세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는 표현은 남북 관계의 ‘패러다임 시프트(주개념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대통령이 넣었다. 또 남북 교역·교류 중단을 선언하면서 “다만 영·유아에 대한 지원은 유지할 것”이라는 대목도 이 대통령이 집어넣었다.

이렇게 여러 차례 수정을 거치면서 담화의 성격도 바뀌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북한에 책임을 묻고 단호한 조치를 선언한다’라는 취지만 담고 있었으나 차츰 ‘천안함 사태 이전과 이후의 대한민국은 달라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는 쪽으로 발전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단순한 화풀이식 담화여선 안 되며, 한반도 정세에 대한 시각이 담겨야 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에서 ‘강경론’이 우세했던 개성공단 부분은 ‘신중론’으로 바뀌었다. 담화에서 이 대통령은 “개성공단 문제는 그 특수성을 감안해 검토해 나가겠다”고만 말했다.

이 대통령과 청와대는 담화 발표 장소로 한때 천안함이 인양돼 있는 평택 해군 2함대 사령부를 검토했다. 하지만 내부 회의에서 “북한을 단순히 압박만 하자는 게 아닌데 장소만 보면 너무 공세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바꿨다고 한다. 이동관 수석은 “전쟁기념관이라고 하는 곳은 전쟁과 평화라는 양의적 의미를 다 가지고 있어 전쟁기념관에서 하는 걸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담화문 낭독을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이 대통령은 이곳에 새로 마련된 천안함 46용사와 제2 연평해전 전사자 명비 앞에서 묵념을 했다.

이날 담화장에서 TV 카메라 앵글 안쪽에는 10명만 배석했다. 두 줄 좌석 중 앞줄에는 외통부 유명환·통일부 현인택·국방부 김태영·행안부 맹형규 장관, 이상우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의장이 앉았다. 뒷줄에는 이상의 합참의장, 한민구 육군총장, 김성찬 해군총장, 이계훈 공군총장, 이홍희 해병대사령관이 전투복 차림으로 앉았다.

글=남궁욱 기자
사진=조문규·김태성 기자



북한 도발 선제적으로 봉쇄

☞◆적극적 억제(Proactive Deterrence) 원칙=북한이 무력도발을 감행하면 방어에 치중하는 태도를 버리고 도발을 선제적으로 막는 활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원칙의 핵심을 ①대남 위협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안보태세 구축 ②영해·영공·영토 무력침범 시 즉각적 자위권 발동 ③향후 대북 경제협력 및 지원과 정치·군사적 신뢰의 연계라고 설명했다.

◆자위권=상대방이 무력으로 침공하면 그에 상응하는 군사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다. 유엔헌장 제51조는 자위권의 발동을 ‘무력 공격이 발생한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핵무기 사용 징후 등에 대해 선제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있다.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이 대통령의 자위권 천명에 대해 “선제권은 포함이 안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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