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 보상금 지급 표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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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부로부터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받은 사람이 2천여명이 넘는데도 법에 따른 보상금이 전혀 지급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운 당사자와 유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지난해 8월 발족한 총리실 산하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그동안 신청해온 8천4백40건 가운데 3천7백60건을 심의, 2천7백3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 심의위는 사망.행방불명자 51명,상이.질병자 2백11명, 유죄판결.해직.학사징계 등을 당했던 명예회복자 2천4백41명에게 상응하는 보상을 하도록 결정했으나 민주화운동 보상법 규정이 불합리해 보상금은 한푼도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

1999년 말 제정된 민주화 보상법이 민주화 기여도와는 상관없이 피해 당시의 임금을 기준으로 호프만식 계산법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보상법에 따르면 노동운동 중 분신 자살한 전태일씨의 경우 유족 보상금이 70년 평화시장 재단사 평균 임금을 기초로 산정한 8백만원에 불과하지만 80년대 말 노동운동가의 경우 1억여원이나 된다. 이에 따라 보상위는 말썽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 아예 보상금 심의.지급을 전면 중단했으며 올해 예비비에서 확보했던 보상금 96억원을 국고에 반납할 예정이다.

정부는 지난 7월 초 사망자.행불자, 상이자, 구금자, 해직자에게 각각 최고 1억원, 9천만원, 7천만원, 5천만원씩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표류 중이다.

정치권에서도 사망 보상금을 2억원으로 높이는 등 개정안을 추진 중이지만 국가유공자와의 형평성을 주장하는 단체들의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86년 4월 대학생 전방 입소 반대 시위 도중 분신자살한 김세진(金世鎭.당시 서울대3)씨의 경우 지난 8월 민주화 운동자로 인정받았으나 유족 보상금은커녕 위원회에서 연락조차 없는 상태다.

당시 '운동권 아들을 둔 죄'로 회사를 그만두고 전전하다 현재 경기도 화성시의 월 6만원짜리 임대아파트에서 어렵게 살고 있는 아버지 김재훈(金在焄.66)씨는 "국가가 민주화 운동을 인정했으면 이른 시일 내 물질적 보상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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