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창하오-이창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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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불가사의한 이창호의 힘

제8보 (150~181)=흑▲로 파고드는 수가 성립되면서 李9단의 오랜 추격전은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됐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으나 집을 세어보니 형세는 이미 미세한 승부로 변해 있었다.

"반집이라도 흑이 두터울지 모르겠어요"라고 누군가 말하자 장내는 문득 조용해졌다. 그 침묵 속에는 '벌써 그렇게 됐나'하는 놀라움과 함께 또다시 역전패의 악몽을 되씹어야 할 창하오9단에 대한 연민마저 섞여 있었다.

李9단이 별다른 큰 수를 둔 것도 아니었다. 창하오9단이 눈에 확 띄는 실착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둑은 어느덧 미세한 승부로 변해 있었다. 이것이 이창호의 불가사의한 힘이었다.

흑의 우세가 명백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프로들은 이미 李9단의 승리를 확신한 듯 미묘한 미소들을 흘리고 있었다.

157로 나왔을 때 바로 끊지 않고 158로 기어나온 것은 그나마 최선이었다. '참고도'처럼 바로 끊는 것은 흑6,8의 끝내기를 당해 크게 오그라든다.

실전은 160에 161로 두는 최선의 응접으로 귀의 백은 잡혔으나(귀삼수) 백은 원하던 170을 선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준수한 편인 창하오9단의 얼굴은 어느덧 괴기하게 일그러지고 있었다. 다시 한번 계산을 마친 뒤 그의 눈은 몹시 분노한 듯 보였다.

그는 허공을 잠시 바라보다가 때마침 초읽기가 시작되자 불현듯 현실로 돌아와 판으로 시선을 돌렸다(167=159, 168=163).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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