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방부, 은폐로 문제 풀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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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이 나라는 대외적인 문서접수 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이중삼중 망신을 당해야 하는 3류국가인가.

대외관계에서 국가권익을 지켜야 할 정부가 그 권익을 지킬 수 있는 초동단계에서마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일을 그르치는 사건이 몇 달 사이에 잇따라 터지고 있어 국가의 신뢰성에 먹칠을 하고 있다.

주중(駐中)대사관의 문서접수 은폐사건이 엊그제 같은데 국방부가 또다시 주한미군의 사실 통보를 깔아뭉개 문제를 키운 일이 드러났다.

미군측은 지난 5월 17일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상의 시설 및 구역위원회에서 우리측 대표(국방부 관재보상과장)에게 용산기지에 대규모 아파트단지의 건설을 추진한다는 '건설계획 최초 기획서'를 포함한 서한을 주고,설명했다.

그러나 국방부측은 이런 계획이 언론보도로 알려져 여론의 거센 반발이 일어나자 "공식 통보를 받은 바 없다"고 사흘간 버티다가 미군측의 경위설명이 임박하자 기획서 접수를 인정하고 나섰다.

또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의에 필요한 자료 보완을 미군측에 요구했으므로 "그 계획을 비공식적인 것으로 간주했다"고 해명하고 있다. 따라서 담당과장은 상부에 이를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논란을 보면서 세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과연 국방부의 해명대로 담당과장 개인의 판단으로 이런 중대한 문제를 윗선에 보고조차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용산기지의 수도권 바깥 이전은 1991년 한.미 양국간 합의사항이다. 정부도 그 필요성을 인식, 이전합의를 미국측으로부터 어렵게 이끌어낸 사안이다.

하물며 서울시와 시민단체들은 그 합의의 이행을 꾸준히 제기해온 쟁점사안이다. 그런데도 담당과장선에서 이 문제를 방치할 수 있었겠느냐는 점에서 국방부의 진상 은폐 의혹이 제기될 수 있다.

둘째, 아무리 자료 보완을 요구했다 하더라도 이전 대상인 용산기지에 반영구적인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들어선다는 미군측 계획을 통보받았다면 당연히 보고하고 대책 마련을 서두르는 게 공직자의 기본자세일 것이다.

더구나 주한미군 슈워츠 사령관은 미 하원에서 주한미군의 주거환경 개선비용 중 상당 부분을 우리의 방위비 분담금에서 사용한다고 보고한 바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크다.

따라서 국방부가 미군측 계획을 사실상 양해 또는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마지막 의문이 남는다. 용산기지 이전에 드는 1백억달러 규모의 이전보상비를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감안, 국방부가 미군측의 시설 개량을 묵인하는 쪽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이다.

국방부는 이제라도 미군측에 아파트 건립의 불가 방침을 확고히 전달하고,SOFA 규정이 허용하는 범위와 주한미군의 특수 성격을 고려해 미군측과 대안을 합리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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