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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예비선거와 정치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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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민주당에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고 있다.당내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하자는 노력이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당쇄신특위가 대통령후보 결정에 예비선거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주목된다. 지금 당헌대로 하면 민주당은 1만명 정도의 대의원들이 체육관에 모여 대통령후보를 결정하게 된다. 예비선거는 이런 방식을 벗어나 전국의 당원과 지지자들이 직접 후보를 뽑는 제도다.

*** 사라질 하향식 밀실공천

민주당 당원들만 참여하는 폐쇄형 예비선거를 도입할 경우 10만여명 정도가 투표권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한다. 유권자를 포함하는 개방형으로 하면 1백여만명이 참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당원과 시민이 함께 투표하는 절충형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어느 방식이건 일단 예비선거가 도입되면 국회의원 후보나 지방선거 후보 결정에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획기적인 시도다. 예비선거를 통한 당내 민주화는 우리의 정당문화를 뿌리째 뒤바꿀 수 있다는 게 정치권이나 학계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가장 큰 폐단인 하향식.밀실공천은 설 자리가 없게 된다. 공천헌금이니 계보간 나눠먹기니 하는 말도 사라진다. 정치주권이 소수 보스의 손에서 다수에게로 넘겨지는 정치혁명이다.

물론 실현까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우리의 정치문화는 척박하다. 정당들이 이합집산을 거듭한 때문에 1995년 5월 창당한 자민련이 최장수 정당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처럼 소속의원을 1백명 이상씩 확보하고 있는 거대 정당도 당비를 내는 당원은 극소수다. 식자층이나 여론주도층이 지구당 운영에 참여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이런 빈약함 속에서 지구당위원장은 대의원들의 자유투표를 봉쇄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도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 현행 선거법은 예비선거에서의 연설회 안내문 배포나 현수막마저 사전선거운동으로 금지하고 있다. 시민이 참여하는 개방형으로 하려면 당원들만 공직선거 후보 선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정당법을 고쳐야 한다. 아직 총재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에 있는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 상향식 공천제 도입에 선뜻 동의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방형으로 하면 반대당 지지자들이 대거 끼어들어 투표를 왜곡시키려 할 것이라는 주장이나, 폐쇄형으로 하면 지구당위원장을 줄세우는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지역순회 방식이 지역간 대결을 부추기고, 인기 위주의 선거운동으로 흐를 것이란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기득권측이 이를 수용할지가 불투명하다. 하향식 공천제에서의 공천권은 그동안 3金을 비롯한 정치보스들의 사당화(私黨化)와 권력유지를 가능케 했던 화수분이었다. 당장 민주당의 주력이라고 할 수 있는 동교동계가 동의할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난관들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은 정당사에 일찍이 없던 황금 같은 기회를 잡았다. 당주(黨主)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총재직을 떠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당내 민주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오너가 스스로 물러난 이같은 호기는 좀처럼 다시 오기 어렵다.

사실 민주당은 상당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1천32만표를 받았다. 4백92만표를 받은 이인제(李仁濟)후보도 현재 민주당에 몸담고 있다. 더하면 지지표가 1천5백만표가 넘는다. 정권도 민주당 수중에 있다.

*** 당내 민주화 정착 기회로

그럼에도 민주당은 9백93만표를 받고 야당이 된 이회창(李會昌)후보의 한나라당에 장기간 주도권을 빼앗기고 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민주당이 스스로를 'DJ당' '호남당' '사당(私黨)'의 울타리 속에 가두고 이에 실망한 많은 지지층을 떠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 민주당이 찬스를 살려 예비선거를 비롯한 당내 민주화의 여러 제도들을 도입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그래야 민주당의 내년 지방선거와 대선전망도 밝아진다.

김교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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