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치료 뉴 트렌드 ② 만성골수성백혈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사진(위)는 1세대 표적항암제 글리벡. 아래는 2세대 표적항암제로 주목받고 있는 스프라이셀.

3년 전 백혈병 진단을 받은 김모(40·남)씨.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불행의 그림자가 없다. 실제 그는 3년 전 결혼에 골인한 이후 직장과 가정을 지켜내는 행복한 가장이다. 김씨도 처음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혁신적인 치료약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치료를 시작했다. 다행히 백혈구와 혈소판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이번에는 부작용과 팔다리에 근육경련이 왔다. 얼굴이 붓고 피부발진도 나타났다. 의사는 그에게 2세대 표적항암제를 권했고, 현재 큰 이상 없이 치료를 받고 있다.

과거 백혈병은 길어야 6개월 정도 수명이 유지되는 치명적인 질환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고혈압이나 당뇨병처럼 관리하는 질환이 되고 있다. 백혈병은 조혈모세포가 병든 백혈구를 만들어내는 혈액암. 다른 종류의 암에 비해 세포 분열 속도가 빠른 데다 예방이 어려워 그동안 불치의 병으로 인식됐었다.

현재 첨단 치료제인 표적 항암제의 혜택을 보는 사람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다.

급성 백혈병과 만성 백혈병은 엄연히 다른 질환. 서울성모병원 암병원 혈액내과 김동욱 교수는 “흔히 용어 때문에 급성 백혈병이 만성 백혈병으로 이환되는 암이라고 생각하지만 두 질환은 암유전자 타입이 전혀 다른 암”이라며 “병의 진행과 증상, 치료 또한 별개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예컨대 급성 백혈병은 암 초기부터 빈혈·발열·출혈·피로 증상이 나타나 이때부터 무균실에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 반면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초기에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몇 달씩 병원을 찾지 않는 경우도 있을 정도. 만성기에 정상 혈액세포 기능이 어느 정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속기나 급성기로 진행되면 미성숙한 혈액세포가 늘어나 발열·출혈 등 급성 백혈병과 유사한 증상이 나타난다.

만성 백혈병의 대표격인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전체 백혈병 환자의 약 15%를 차지한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2000여 명의 환자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계기는 표적 항암제인 글리벡(성분명 이매티닙)이 개발된 이후부터. 지금은 스프라이셀(성분명 다사티닙, BMS)·타시그나(닐로티닙, 노바티스) 등 2세대 혈액암 치료제가 속속 등장해 글리벡으로 치료되지 않는 환자도 암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됐다.

약물치료를 받는 환자는 5년 생존율이 89%에 달하고, 평균 기대 수명이 25년까지 늘어나고 있다. 약물치료는 초기 단계에서 시작할수록 생존율이 높다.

흥미로운 것은 항암제를 끊고도 암이 재발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

김 교수는 “현재 약을 중단하고도 5년 이상 살고 있는 환자가 있다”며 “각국에선 백혈병을 완치하는 연구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글리벡에 내성이 생긴 환자들이다. 김 교수는 “글리벡 치료는 2년 이내에 약이 잘 듣는지 여부가 판가름 난다”며 “치료효과가 없으면 2세대 항암제를 사용하고, 그래도 안 될 경우 마지막 단계로 조혈모세포 이식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현재 2세대 치료제인 스프라이셀은 만성 골수성 백혈병의 내성 발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암 단백질을 광범위하게 억제하는 효과가 뛰어나 다.

삼성서울병원 혈액내과 정철원 교수는 “글리벡이 맞지 않는 환자에게 무작정 약의 용량을 조절하기보다 스프라이셀로 전환해 투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종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