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사려면 섣부른 예측 말고 최대한 기다려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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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호 26면

“화폐가 튼튼한지 아닌지로 그 나라의 흥망성쇠의 흐름을 알 수 있다. 1914년 잉글랜드은행이 파운드화를 금과 바꿔주지 않는다고 선포했을 때 대영제국의 위풍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닉슨이 1971년 일방적으로 황금 창구를 폐쇄했을 때 미합중국의 번영은 이미 정점을 지나 쇠퇴로 돌아서는 전환점에 도달했다. 영국의 국력은 제1차 세계대전의 포성 속에서 빠르게 쇠퇴했으며, 미국은 다행히도 큰 전쟁을 치르지 않았기에 한동안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화려하고 웅장한 대저택 안에는 이미 거액의 부채로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쑹훙빈 『화폐전쟁』)

널뛰는 달러·유로 시대, 기러기들의 선택은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에 외환시장이 불안하다. 달러가 약세에서 벗어나 힘을 쓰고 있다. 지난달 말 달러당 1100원 선이 무너질 듯했지만 7일에는 1170원 턱밑까지 치고 올라왔다. 연초 전문가들이 쉽게 뚫릴 것으로 봤던 달러당 1100원의 지지선이 예상보다 견고하다. 아내와 자녀를 외국으로 보낸 ‘기러기’나 곧 기러기가 될 이들이라면 외화적립식 예금 등으로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 최근 혼돈을 투자 기회로 보는 사람은 외환시장 동향에 주목하며 투자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외국인 주식 매수 주목
한국은행은 최근 ‘유로화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펴냈다. 보고서에서 유로화를 사람에 비유해 ‘사춘기’로 표현했다. 사춘기는 ‘질풍노도의 시기’다. 지금 유럽이 겪고 있는 혼돈을 떠올리면 딱 맞는 표현이다. 사람의 사춘기는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 얼마간은 이어진다. 그래서 사춘‘기(期)’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유로화가 안정을 되찾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유로화가 달러를 대신해 기축 통화로 부상할 가능성은 작아졌다”고 덧붙였다.

세계 3대 통화의 하나로 꼽히던 유로가 떨어져 나갔다(엔화는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으면서 세계 무대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남은 건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화다. 추세적으로 보면 ‘달러 약세, 위안화 강세’는 자명해 보인다. 문제는 당장 올해, 내년이 어찌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수십 년간 기축통화로 군림했던 달러의 위세가 생각보다 세기 때문이다.

남유럽발 경제위기 등 외부 요인을 빼고 단기적으로 달러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큰 내부 요인은 외국인들의 주식 매수 동향이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외국인이 주식을 팔면 이를 달러로 바꾸려는 수요가 늘기 때문에 달러 값이 비싸진다. 남유럽발 위기 이후 외국인들은 14일까지 3조원 가까이 팔았다. 13일 674억원을 사들여 이제는 순매수로 돌아서는가 싶었지만 14일엔 2000억원 가까이 내다 팔았다.

그러나 달러 강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듯싶다. 일단 유럽발 위기는 당장은 수면 아래로 내려앉은 모양세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국내 기업들의 2분기 실적은 1분기에 이어 양호할 것으로 보인다. 증권조사업체 에프엔가이드가 국내 500개 기업의 실적을 조사한 결과 2분기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분기에 비해 43.5% 증가할 것으로 나타났다. 전 분기에 비해서도 0.9%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다음 달에는 국내 증시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에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 MSCI지수를 따라서 투자하는 돈이 전 세계적으로 4조 달러다. 전문가들은 국내 증시가 MSCI선진지수에 편입되면 100억~300억 달러의 자금이 추가로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보고 있다. 최소 10조원 가까운 돈이 시장에 들어오는 셈이다. 동양종금증권 이재만 연구원은 “유럽발 재정위기에 대해 비관적인 시각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유럽연합(EU)의 지원책으로 그리스발 악재는 진정됐다”며 “당분간은 외국인들이 이전 같은 모습을 보이진 않겠지만 여전히 매수 기조를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시장에 들어오려면 달러를 원화로 바꿔야 하기 때문에 달러는 점차 약세를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공항지점이 환전수수료 가장 비싸
환율과 관련해 유명한 우스갯소리가 있다. 아인슈타인이 천국에 오는 사람들에게 각자 능력에 맞는 일감을 나눠주는데 아이큐가 200인 사람에게는 물리학 연구를, 평범한 사람에게는 수학을 공부하라고 했다. 아이큐가 두 자릿수인 사람에게는 한참 고민하다 “에잇, 환율이나 전망하시오”라고 했다는 얘기다. 예상은 하지만 확신은 못한다. 환율에 대해서는 그렇다.

당장 여름을 맞아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에게 장기 전망은 무의미하다. 이런 사람들이라면 환전만 잘해도 원-달러 환율이 50원쯤 흔들리는 건 만회하고도 남는다. 환전을 할 때는 먼저, 웬만하면 주거래 은행에서 하도록 한다. 대부분 은행이 주거래 고객이나 신용카드 회원에게는 환전 수수료의 30~50%를 깎아 준다. 가끔 은행들이 거래 고객 여부와 관계없이 큰 폭으로 수수료 할인 이벤트를 벌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벤트를 뜯어보면 주거래 은행에서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수준의 할인 혜택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혹시 50% 이상 수수료를 깎아주는 행사라면 주목할 만하다. 대부분의 은행이 외화예금 통장 가입 고객에게 주는 할인 혜택이라도 최대 50%를 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이용해도 수수료를 줄일 수 있다. 인터넷으로 환전을 하면 수수료의 최대 70%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또 24시간 환전이 가능해 이용이 편리하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해외 여행을 떠난다면 공동구매 환전을 이용해 수수료의 50~70%를 깎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싸게 환전해 보겠다고 버티다가 공항 은행 지점에 가서 환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대개의 경우 공항 지점은 다른 일반 은행 지점에 비해 수수료를 두 배 이상 비싸게 받는다.

‘푼돈’이 드는 휴가와 달리 해외 연수나 유학이라면 미리 나눠 사서 달러 목돈을 마련하는 것이 좋다. 달러 가치가 더 오를 것을 예상해 덥석 거액을 바꿔놓거나, 반대로 달러 값이 바닥까지 떨어질 것을 기다리다가 기회를 놓치면 후회하기 십상이다. 우스갯소리처럼 환율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예측이 어려운 외환 시장에 대응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조금씩 나눠 사는 방법이다(물론 이 방법으론 달러를 아주 싸게 사지도 못한다). 적립식 펀드의 원리를 생각하면 된다. 달러가 비쌀 때는 조금, 쌀 때는 많이 사서 평균 달러 매수 단가를 낮추는 방법이다. 국민은행의 ‘KB 적립식 외화정기예금’이 대표적이다. 매월 일정액을 자동이체할 수 있고 수시로 추가 적립할 수도 있다. 특히 자동적립을 할 때 환율의 상한과 하한 범위를 지정해 외화를 살 수 있다. 예를 들어 달러당 1200원이 넘어가면 너무 달러가 비싸다고 생각해서 달러 매입을 중단하는 식이다. 반대로 달러가 싸다고 생각하면 추가 적립을 통해 더 사면 된다.

적립식이 아니라면 원화와 외화의 전환이 자유로운 상품을 골라 시장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 신한은행의 ‘자유전환 외화정기예금’에 가입하면 가입 1개월 후부터는 외화 예금을 원화 예금이나 금 적립 통장으로 전환할 수 있다. 달러 가치가 자꾸 떨어져서 달러 예금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되면 최근 치솟고 있는 금 통장으로 해지·가입 절차, 그리고 수수료 없이 바꿀 수 있다. 물론 반대로 달러 가치가 다시 오를 것 같다면 원화나 금 예금을 달러 예금으로 바꾸면 된다.

연수나 유학 간 자녀가 적은 수수료를 들여 돈을 쉽게 찾아 쓰도록 하겠다면 씨티은행의 ‘국제현금체크카드’를 애들 손에 쥐여줘도 좋다. 이 카드는 국내에 있는 씨티은행 통장에 돈을 넣어두면 전 세계 33개국 씨티은행의 현금인출기(ATM)에서 건당 1달러만 내고 현지 통화로 돈을 빼 쓸 수 있다. 송금수수료를 안 내도 되는 셈이다. 체크카드 기능도 겸해 있어 국내외 비자 가맹점에서 결제도 가능하다.

다음 달 예정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중국 위안화가 절상될 것으로 예상한다면 환노출형 중국본토 투자펀드에 가입하면 된다. 위안화 강세에 따른 환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현재 환노출을 하는 중국본토투자펀드는 ‘한국네비게이터중국본토펀드(UH)’ ‘삼성차이나2.0본토2(A)’ 등이다. 그러나 설정액이 10억원에도 못 미치는 등 환헤지를 하는 펀드에 비해 시장의 관심을 못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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