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말렸지만 전격 진입 탈레반 "작전상 후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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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북부동맹의 모하메드 파힘 사령관과 압둘라 외무장관이 13일 오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 입성하는 순간 북부동맹 병사들은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쳤다. 동시에 1천명의 북부동맹 요원들은 카불 시내 12개 구에 흩어져 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5년 동안 오지에 쫓겨나 있던 북부동맹이 수도 카불 재탈환의 꿈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지난달 7일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 개시를 신호탄으로 북동부 산악지대에서 서서히 카불을 향해 남하하던 북부동맹은 이날 새벽 마침내 카불 시내에 선발대를 투입했다. 탈레반군은 이미 도시를 버리고 퇴각한 상태였으며 시내에는 탈레반의 폭정에 시달린 군중들이 몰려나와 "탈레반에 죽음을"이라고 외치며 이들을 반겼다.

열악한 무기와 수적 열세로 탈레반군에 패퇴를 거듭하던 북부동맹이 본격적으로 카불을 향한 진격을 시작한 것은 지난달 말. 미군이 카불 북부의 바그람 공항 주변을 공습해 북부동맹에 진격로를 열어주면서부터였다. 로켓포와 구형 자동소총을 앞세운 북부동맹군은 오랜 공습과 마자르 이 샤리프 전투 등으로 탈레반의 세력이 약화된 틈을 타 지난주 카불 북부 50㎞ 지점까지 진군했다.

그 뒤 하루하루 탈레반과의 간격을 좁혀온 북부동맹은 12일 오후 카불 북부와 동부의 외곽도로 진입로까지 이르렀다.

이날 밤 다음날 새벽까지 미군은 B-52 전폭기로 카불 시내에 폭탄세례를 퍼부었고 북부동맹은 카불의 관문인 샤카르다라 마을에 6천명의 군인을 포진했다.

"목숨을 걸고 사수하겠다"며 기세 등등히 탱크로 대적하던 탈레반은 새벽녘에 돌연 행정.교통.교역의 중심지인 카불을 포기하고 트럭과 탱크에 올라 줄지어 남쪽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6㎞ 사이에 둔 심야의 대치상황이 싱겁게 끝난 것이었다.

북부동맹은 "카불 진입을 자제해달라"는 미국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곧바로 수십명의 군인을 보내 카불 중심부의 대통령궁과 정부 청사, 그리고 탈레반 군 병영들을 접수하기 시작했다.1996년 탈레반에 의해 쫓겨나 무장투쟁을 벌여온 이래 처음으로 카불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미국인 두명을 포함해 여덟명의 외국 구호단체요원을 트럭에 실어 탈레반의 마지막 요새 칸다하르를 향해 떠난 탈레반은 "민간인 피해를 막기 위해 물러난 것일 뿐 패배는 어림없는 소리"라며 '작전상 후퇴'임을 강조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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