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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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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얼마 전 필요하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는 것이 남산공원에 새로 생겼다. 지난해 늦가을인가부터 포클레인이 들어오고 돌 실은 트럭 등이 오가더니 ‘남산 실개천’을 만든단다. 시멘트를 원통 모양으로 찍어 쇠꼬챙이를 끼워 울타리를 만들고, 길 옆을 파서 비닐과 부직포 등을 다섯 겹으로 깔고 그 위에 주워온 자갈과 모래를 깔고 어항에 물 채워 넣듯이 물을 넣고는 실개천이란다. 꽃도 심고 화강암을 가져와 깍두기마냥 썰어서 바닥도 깔았다. 거대한 비닐 어항을 만들려니 나무들의 자리도 바꾸어야했다. 存(존), 廢(폐), 移(이), 세 가지로 구분해서 나무 기둥에 붙여놓았었는데 폐를 붙인 나무들은 시들시들 마르더니 구태여 죽일 필요도 없이 말라 죽던데, 폐라는 글이 사형선고나 다름없으니 지레 겁먹고 말라 죽은 것은 아닐까.

남산을 오래도록 다녔지만 비 온 다음 날 이외에는 계곡에 물을 본 적이 없는데 그 비닐 보에 채울 물은 지하수를 펌프로 퍼 올려 돌린단다. 수도를 틀어 채우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시내 한복판에 있는 남산 공원은 차와 자전거의 통행을 못하게 해서 일반인뿐만 아니라 많은 시각장애인이 안전하게 산책도 하고 마라톤 대회나 걷기 행사로도 자주 애용되고 있는 곳이다. 봄이면 벚꽃놀이, 가을이면 단풍놀이, 겨울이면 눈꽃축제를 모조리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도심에서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시험 가동한 지 한 달도 안 돼 벌써 모터에 문제가 생겼는지 간장독 위에 피는 흰 골마지 같은 것들도 둥둥 떠다니던데, 안방에 비닐 깔고 정원 만들 듯이 꼭 그렇게 해야만 했었을까. 순박했던 남산의 옛 모습이 그립다. 갈비집 정원에서나 보던 인공 폭포까지 만들어 놓았더라. 물 조절용 스위치도 있는 모양인데 그건 우리 동네 목욕탕의 냉탕에도 있다. 조잡한 식당 입구에 설치해 놓은 물레방아와 자갈과 화분 그리고 내장 빼서 속을 채워 만든 박제된 새를 보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이 남산의 비닐 어항을 반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원래 조화가 생화보다 보기엔 더 아름다운 법. 얼핏 보면 강제로 흐르게 만든 물이나 폭포가 보기 좋을 수도 있겠지만 말은 정확하게 하자. 그 비닐 어항은 결코 친 환경적인 것도 아니고 실개천은 더더욱 아니다. 그저 거대한 비닐 어항에 불과하다. 나중에 그 보를 뜯게 되면 다섯 겹의 썩지도 않는 그 두꺼운 비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자연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비닐을 깔고 물이며 물고기며 돌과 꽃 등을 가져다 만들어 놓았다면 그건, 동물을 미치도록 사랑하기에 모피 옷만 입는다는 말과 뭐가 다르겠는가.

자연을 사랑하는 방법이 틀렸다.

엄을순 문화미래 이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