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SBS '화려한 시절' 작가 노희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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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작가 노희경(35)이 그동안 빚어낸 드라마 속 삶은 고통으로 대변된다.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상처투성이 군상에게 꿈은 곧 좌절로 이어지므로 삶은 고단한 시간 보내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굴곡진 인생이 고아로 태어나 이용만 당하며 살아온 여자 옥희('바보같은 사랑')나 노름꾼 아버지에 의해 술집 작부가 된 애숙('내가 사는 이유')뿐일까. 그래도 그들에겐 돈이나 '빽'없이 가질 수 있었던 사랑이 있었다. 그걸 붙잡고 있었기에 드라마는 결코 척박하지 않았다.

'내가 사는 이유''거짓말''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바보같은 사랑'. 가슴 저미도록 명징한 언어로 많은 매니어들을 거느리며 하나의 문화현상을 만들어낸 노희경. 이제 서른 중반에 이른 그도 달라지려는 것일까. '바보같은 사랑' 이후 1년 반만에 'SBS 새 주말 드라마 '화려한 시절'(11월 3일 방송.이종한 PD)을 들고 나온 그의 첫마디는 상당히 의외다.

"그동안은 취기와 객기.엄살로 보낸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극단적으로 주관적이었고요. 이제는 달라지려 합니다. 제가 그린 무대는 항상 상처나고 가난하고 암울했지요. 희망이야 있지만 그래도 삶은 고단하다는 거였으니까요. 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무리 고단하고 힘들어도 삶이란 아름다운 것으로 보려고요."

그는 5년 전 쓴 '내가 사는 이유'와 새로 쓴 '화려한 시절'이 자신의 생각 변화를 말해줄 것이라고 했다. 똑같이 70년대를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꿈과 방황, 그리고 상처를 그리지만 새 작품에선 예전처럼 본인의 고통스러웠던 지난날이 그대로 투영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각박한 일상조차 아름다운 추억으로 감쌀 것이라고 한다.

"정말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봐요. 20대땐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죠. 20대 후반에 '내가 사는 이유'를 쓸 때도 그랬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웃기죠."

행여 그 특유의 분위기를 잃는 것은 아닐까. "스무살과 서른살의 드라마는 달라야 하지 않겠어요. 그걸 조금씩 성숙해간다고 하는 것 아닌가요. 마흔에는 또 달라져야 하듯. 그대로라는 말을 들어선 안되잖아요. 그렇다고 순수와 열정이야 버리겠어요□"

70년대 이태원이 배경인 '화려한 시절'은 가짜 대학생 날라리 민주(박선영)를 각기 다른 모습으로 사랑하게 되는 명문대생 석진(지성)과 천방지축 문제아 철진(유승범)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그들 가족의 모습도 따스한 시선으로 감쌀 예정이다.

"사실 이 작품은 내 가족에 대한 선물이었으면 해요. 전작들에서 가족들이 기억하는 아픔들을 많이 끄집어냈기에 항상 미안하고 안타까웠는데…." 이런 마음 때문인지 그는 1년 반이란 공백기간에 쉬지 않고 자신이 왜 그토록 힘들게 이 글을 쓰는지 되물을 정도로 이 작품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제2의 김수현이란 소리도 듣고 '거짓말'로 인해 컬트 드라마 작가라고들 부르던데 …"라고 인터뷰 말미에 넌지시 물었다.

"앞 얘기는 과찬이죠. 김수현 선배가 기분나빠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뒤의 것은 사양해요. 컬트란 소수가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소리인데 저도 시청률 높은 드라마를 정말 만들고 싶거든요. 나는 왜 드라마 작가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서지 못하나 싶어서요."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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