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법관 의식 개혁이 우선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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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견법관 33명이 '법의 지배 확립을 위한 사법부 독립과 법원 민주화를 생각하는 법관들의 (사이버) 공동회의'를 발족시키고 사법부 개혁을 주장하고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공동회의측은 법원 내부 통신망에 사이버 토론방을 개설해 사법부 개혁에 대한 법관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혀 대법원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이들은 발족 취지문에서 "부정부패가 도를 넘어서 온 국민이 방황하고 있는 사법위기의 시대를 맞이한 원인 가운데는 법관들이 책무를 다하지 못해 온 점이 있으며 이는 상당부분 사법 시스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또 "공식적인 판사회의는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의하달의 일방통로가 돼 버렸다"고 발족 동기를 밝혔다.

법원 내부에서 강도 높은 개혁 요구가 터져나왔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업무 특성상 가장 안정보수 성향의 조직이어야 할 사법부에서 법관들이 집단행동을 보인 것은 검사들의 집단행동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봐야 하고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도 여간 크지 않을 것이다.

법관들의 움직임은 지지부진한 사법부 개혁에 대한 법원 내부의 경종으로 봐야 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사법제도 전반을 포함한 법원 개혁이 논의됐지만 갖가지 암초에 걸려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사법부에 대한 국민 신뢰가 점점 떨어지는 바람에 법원 개혁 또한 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였다.

사법부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법관들의 정치권력 눈치보기, 유전무죄 유권무죄 재판 등 사법부 불신 요인이 마치 법관인사제도 등 '사법시스템'의 잘못 때문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사법권의 정치적 독립, 공정한 재판 진행, 비리 관행 타파 등을 위해서는 시스템보다 법관 개개인의 의지와 소명의식 개혁이 더 절실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법부 개혁은 법관 의식개혁이 선행되고 이를 위한 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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