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원들의 거친 반일시위 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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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말 많고 탈 많다'는 평판을 받아온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오늘 서울에 들어온다. 올 봄 그가 총리가 된 뒤 냉각된 한.일관계를 따져보는 우리 국민의 감정은 결코 편치 않다. 역사 교과서 왜곡.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에 이어 남쿠릴 열도 근해의 꽁치 조업 금지 문제까지 겹쳐 우리나라 여론의 악화를 불러왔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우여곡절 속에 자리잡은 양국 사이의 선린(善隣)의 틀.원칙과는 거리가 먼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우리 국민에게 심어 놓았다. 여기에다 그의 방한을 반대한다는 정부의 방침이 갑자기 바뀐 데 대한 여론이 비판적이어서 그의 서울 등장은 더욱 개운치 않다.

그런 고이즈미 총리가 서울 체재 중의 일정인 국회 방문을 한나라당이 문제삼고 나섰다. 한나라당 일부 의원들은 교과서 왜곡에 대한 사과와 꽁치 조업 협상에서 양보하지 않을 경우 의사당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한다.

의원들의 이런 움직임은 여론 흐름에 충실하겠다는 입장 표시로 보인다. 긴 호흡의 전략을 마련하지 못한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를 보완하는 측면에서도 의원 외교 차원의 '시위(示威)'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의원들의 이런 집단적인 움직임은 우리 정치권의 대일 접근 자세가 국민 정서.감정에 의존한다는 인상을 줄 만하다. 국민 여론을 정리.소화해 효과적인 대책을 내놓는 것이 정치의 기능이라고 볼 때 거꾸로 여론에 편승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기 쉽다.

특히 미묘한 문제가 걸린 대일 외교에서는 국민 감정의 적절한 관리와 효과적 배분이 고려돼야 한다는 게 오랜 외교 경험에서 얻은 교훈이다. 그런 점에서 당론과 관계없는 개인행동이라지만 방한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의사당에 서 있겠다는 발상은 적절치 못하다.

정상 외교의 결례 문제가 생길 수 있고 대일 외교의 총체적인 추진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우리 정부의 대일 외교 미숙을 탓하는 야당조차 역시 미숙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의사당 내 피켓시위 계획은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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